의와 인과 신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3)

당회장 이재록 목사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은 물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장로의 유전까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얼마나 철저히 지켰는지 작은 채소의 잎사귀와 줄기에까지 십일조를 적용시켰지요. 또한 율법을 연구해 백성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하나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임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연구해 문자 그대로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율법의 근본정신 즉 ‘의와 인과 신’은 저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외식 속에 감추어진 탐욕과 방탕, 불법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며 책망하곤 하셨지요.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 마음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1. 의와 인과 신의 의미
첫째로, ‘의(義)’는 옳은 것을 좇는 마음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이라는 기준에 비춰볼 때 겉으로는 참으로 의로워 보였습니다. 행위적으로는 하나님 계명을 철두철미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면서 실속을 차릴까’를 궁리했습니다. 사람 앞에서 의롭게 보이는 데에만 급급했지요. 마음에는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마태복음 23:5~7을 보면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했지요. ‘경문’은 두루마리 성경이 담긴 가죽 상자를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려고 남보다 큰 경문을 만들어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남들보다 큰 성경책을 지니고 다녔지요. 또 이들은 금식할 때면 사람에게 알리려고 얼굴을 흉하게 만들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기도하며 금식하는 듯했지만 정작 마음에는 옳은 것을 좇는 마음 곧 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의로워 보이기 위해 말씀을 지켜 행하지는 않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는 사람은 상황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그 행함이 한결같습니다.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든,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든 그렇지 않든, 당장에 유익이 되든지 해가 되든지 말씀에 비추어 옳은 것을 좇지요. 항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께 참 자녀라 영의 일꾼이라 인정받고자 말씀을 지켜 행합니다. 선하게 사는 것이 좋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행복해서 말씀대로 삽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의를 마음에 이루어 참으로 의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사랑과 덕이 있을 때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런 사랑이 없음을 탄식하셨지요. 계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함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고소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했지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비출 때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간교한 마음과 죄인을 정죄하는 마음만 있을 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전혀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살리기 원하십니다. 마음에 이러한 하나님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죄인도 긍휼히 여기게 되지요. 율법에 의하면 죄인은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삼으셔서 죄를 사해 주심으로 공의를 초월한 사랑을 베푸셨지요. 마음에 ‘인(仁)’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하나님 계명을 지키되 이웃에게 선만을 행하게 됩니다.
셋째로,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먼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하고, 또한 계명을 지키며 살 때 상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참으로 믿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계명을 지키기는 했지만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눈가림만 했습니다. 즉 자신의 불의한 마음을 낱낱이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하나님을 마음 중심으로 믿었다면 선행을 상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 중에 의를 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노하는 자에게 더 좋은 천국을 허락하십니다. 세상 것을 끊고 말씀을 무장하며 기도할 때마다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또 상 주실 하나님을 믿고 행해 보십시오. 그러면 죄를 버리는 것도 충성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더 아름다운 천국에 나의 처소가 지어지고 더 많은 상급이 쌓이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계명 곧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을 반드시 믿음으로, 즐겁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의와 인과 신이 더 중요하니 행함은 중요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것’도 행하고 즉 의와 인과 신도 이루고 ‘저것’도 즉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는 행함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의와 인과 신이 마음에 이루어지면 자연히 계명을 지키는 행함도 따릅니다. 아직 의와 인과 신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해도 마음 중심으로 말씀을 지켜 행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고 의와 인과 신을 속히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즉 믿음이 빨리 성장하지요. 그런 반면 외적인 행함이 승하다 해서 자신이 말씀대로 산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믿음의 성장이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의와 인과 신을 이루려면
예레미야 4:4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 가죽을 베라’는 말씀은 죄악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할례를 몸에 행했고, 신약 시대에는 마음의 할례를 합니다. 골로새서 2:11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여기서 ‘육적 몸을 벗는 것’은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곧 추하고 더러운 육을 마음에서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할례를 해 온갖 더러운 죄악을 원천적으로 없앨 때 마음에 의와 인과 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의 할례는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하고 충성한다고 해도 마음 중심으로 하지 못합니다. 온전히 마음의 할례를 하면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그 사람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집니다(고후 2:15).
여러분 모두 속히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참으로 아름답다, 합당하다” 칭찬하시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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