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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8 - 하나님의 공의가 정오의 빛같이


412
2023년 4월 16일 일요일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편 37:6)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진정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근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자체가 되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주시기까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시되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참으시고 우리의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해 주시며 율법을 완성하신 사랑의 주님을 알아야 비로소 사랑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주고 계실까요?


1.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과 공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의는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 말이지요.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율법, 곧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만 알고 공의를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공의만 알고 사랑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운 분으로만 인식하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조화를 이룰 때 참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영계를 포함한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유일한 심판 주가 되시지만, 자신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내용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는데, 하나님께서도 이 말씀에 따라 정확하게 역사하고 계시지요.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의의 기본 원칙을 간단히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마음에 품은 생각과 말, 행동 하나까지도 포함되므로 어떠한 것이든 악한 것으로 심으면 악으로 거두고, 선한 것으로 심으면 선으로 거두게 된다는 원칙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7절에도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했고, 로마서 2장 6절에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한 공의의 원칙에 따라 행하시는 분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죄를 심으면 사망으로 거두게 하십니다. 따라서 마지막 백보좌 대심판 때 죄인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공의가 담긴 말씀입니다. 즉 얼마큼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는다는 것이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편벽됨이 없이 공평할 뿐 아니라 정확합니다. 잠언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말과 행동은 물론 모든 생각과 마음에 품는 것까지도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는 예외가 없으며 이 땅에서든 아니면 심판 날에 가서든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 공의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마치 하나님께서 율법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으시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사람마다 벌을 주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보다는 공의에 따른 징계가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가 무섭게만 느껴지는 것이지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는 벌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상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악을 행한 사람은 악을 행한 만큼 반드시 그에 대한 보응이 주어지지만, 반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행한 만큼 반드시 선과 축복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며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에는 하나님 뜻대로 살기 원하고 진리를 좇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며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느낄 수 있지요. 공의 가운데 받는 징계나 연단도 결국은 나를 온전케 만들고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임을 깨달아 어둠에서 떠나 빛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잠 3:12). 만일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으니 징계를 통해서라도 깨닫고 돌이키게 하여 구원과 축복의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히 12:8).


3.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해 온전한 모습으로 나온 다윗

통일왕국을 이룬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버리지 못한 죄성이 있어 밧세바라는 여인을 취하고 이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그 남편인 우리아를 적군의 손에 죽게 만듭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징계와 함께 혹독한 연단을 받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죽었을 뿐 아니라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인 다윗까지 죽이려 한 것이지요. 이에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성을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피난길에서 시므이라는 백성으로부터 경멸적인 저주를 듣지만, 그를 죽일만한 권세와 힘이 있었음에도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부하가 죽이려고 하는 것까지 막았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연단임을 깨닫고 겸허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심히 큰 사랑과 축복을 받았던 다윗이었기에 더더욱 분명한 공의로 역사하셨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남아 있는 죄성까지라도 완전히 뽑아내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죄를 범하기 전에 미리 경고하심으로 깨우침을 주고 막아 주실 수도 있었지만, 굳이 외면하심으로 그 악을 드러내시고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합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더욱 큰 축복을 넘치게 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저주하고 욕했던 악한 시므이나 아버지를 반역해 죽이고자 했던 압살롬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는 진리 안에 살고자 하며 설령 전에는 죄 가운데 있었다고 해도 이제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게는 양약이 되고 축복으로 임하지만, 반대로 죄 가운데 거하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한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까닭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전 12:14 ; 갈 6:9). 반드시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으면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선과 진리대로 행해 나갈 수 있지요.
설령 애매하게 핍박당한다 해도, 억울한 누명을 쓴다 해도, 또 당장에는 진실이 가려지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 낙망치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4. 공의를 정오의 빛에 비유하신 이유

정오의 빛은 하루 중에 가장 밝히 비추는 빛입니다. 깊은 산 속에 있다고 해도,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있다고 해도 중천에 떠 있는 태양에서 발하는 정오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너무나 밝히 빛나므로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공의가 있으므로 하나님 사랑과 보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나게 되지요.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셔서 옳은 것을 드러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택하시고 40년간의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장정만 해도 6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한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지도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광야 생활하는 동안에 수많은 불순종과 원망, 불평하며 때로는 대적해 오기도 하는 백성들을 오래 참고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마음으로 인도해 가기 위해서는 큰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큰 사랑과 온유한 마음, 덕으로 온 백성을 감싸 그들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 있었고, 후계자 여호수아가 등장할 수 있었으며, 출애굽 2세들이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치 않으셨지요. 출애굽 한 사람 중에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 중에 고라를 비롯해 한 무리가 반역을 일으키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했을 때, 땅이 그 입을 열어 삼키는 무서운 재앙으로 그들을 멸하셨지요. 이때도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공의의 심판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결코 사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무 잘못 없는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함으로 공의를 굽게 하려고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시기 위함이요, 백성들에게 교훈을 삼게 하시고 다시금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며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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