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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월요일 오후 9:3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6 - 사랑은 두려움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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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8~19) ...
       
 
  
 

'위로부터 난 지혜' 시리즈 6 -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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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8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7~18)


어느 날, 한 여인이 과자와 책 한 권을 사 들고 기차를 탔습니다. 험상궂은 청년의 옆자리였지요. 기차가 출발한 뒤 책을 읽던 그녀가 문득 청년을 보니 자기 과자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를 먹네? 인상도 험악하더니….' 이런 생각을 하며 눈치를 주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자기 것이라고 표현하기 위해 함께 과자를 먹어도 청년은 개의치 않았지요.
기차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청년은 마지막 남은 과자를 반으로 자르더니 한쪽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고맙다." 혹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나자 여인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요.
그런데 짐을 챙기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샀던 과자가 가방 안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과자를 마음대로 먹은 것은 청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면 사실이 아닌 일도 사실인 것처럼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그녀는 청년에 대해 인상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남의 것을 먹는다고 단정했지요. 자기 가방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친절을 베푼 상대를 나쁘게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서나, 환경에 대해서 편벽되지 않은 마음으로 보아야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1. 편벽이 없으려면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편벽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사에 치우침이 없다면 누구를 대하든지 한결같습니다. 외모나 경제적 여건, 학벌 등 상대가 가진 조건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달리하지 않지요.
무엇을 하든지 편벽이 없으려면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함이 없으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배운다고 해도 그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은 "원수도 사랑하라"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성품, 내가 옳다고 하는 것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볼록렌즈로 보면 뚱뚱해 보이고 오목렌즈로 보면 홀쭉해 보입니다. 만일 렌즈에 비치는 모습만 보고 말한다면 "내가 본 대로 말한다." 하겠지만, 분명히 실제와는 다르니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대는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긍휼함이 없는 만큼 좌우로 치우칠 수 있으니 상대의 언행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편견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거짓이 섞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진실하고 사랑과 긍휼함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어떠한 모습을 본다고 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감싸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긍휼은 생명을 살리는 선한 열매를 맺지만, 편벽됨은 판단과 정죄로 진실을 왜곡하며 생명을 잃게 만드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편벽된 시각으로 율법을 해석하고 이에 맞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단정했지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치신 일을 두고도 '안식일을 범하는 악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뜻은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안식을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거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노동이 아니라 안식일에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편벽됨 속에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거짓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2.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보려면

많은 사람이 자신의 편벽됨으로 인해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거짓의 열매를 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야단칠 때도 그렇습니다.
형제간에 다퉜을 때 부모가 그 이유를 형에게 물으니 "동생이 먼저 때렸어요."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동생의 잘못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 물으니 "형이 장난감을 뺏으려고 해서 그랬어요." 하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동생의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혼냈다면 동생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니 지혜로운 부모라면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유익과 생각에 맞춰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편벽된 시각이 자신도 모르게 거짓된 언행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을 범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믿지 않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며 어떻게든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반면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이나 나쁜 선입관을 가졌던 사람의 일이라면 안 좋은 소문도 금방 믿어버리고 자기의 싫어하는 마음을 정당화시키기까지 하지요. 편벽된 마음이 있기에 사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소문을 쉽게 받아들이고 상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만일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여러분의 눈을 피하면서 급히 지나간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쁘거나 딴생각하느라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고, 시력이 나빠 못 보았거나 자기 모습이 민망해서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상대에 대한 사랑과 긍휼함이 없다면 나쁜 쪽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긍휼과 사랑이 없는 만큼 편벽된 시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동원하지요.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눈이 가려져 진실을 알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상담받을 때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쪽으로 치우쳐 말합니다. '어느 편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를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해도 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답을 들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지요. 또 전후 사정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기에 잘 분별하여 상담해야 합니다.


3.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아 범사에 편벽과 거짓이 없이 진실하려면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상대에게 직접 들어보면 사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말만 들어서는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편벽과 거짓이 없이 진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약한 사람에게 치우치는 것도 진리 안에서는 편벽된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3절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뿐만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지칭합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 편을 들어서도 안 되지만, 가난하고 약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편벽되거나 친분이 두텁다고 정에 치우친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치우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분별하기를 원하십니다.

2)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면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면 자신이 직접 보고 듣는다고 해도 진실을 정확하게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남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추측만으로 단정한다면 큰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공의롭게 자세히 살피지 않고 상대의 말만 믿는다면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지요.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큰 이익이 눈앞에 있다면 더 쉽게 상대의 말을 믿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이 수익성이 좋다는 말만 듣고 거액을 투자했는데 사기를 당하거나 큰 손해를 봤다면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사업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면 참고는 하되, 당사자가 다방면으로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거래할 상대가 신뢰할 만한지, 수익성이 확실히 있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하지요. 비단 사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고 듣고 판단하는 모든 일에 신중히 처리해야 마음을 더 반듯하게 만들고 공정하게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어떤 말을 하거나 무엇을 생각할 때 감정과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친분이 있거나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합니다. 가령, 친하지 않은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교만해서 질서를 어긴다. 불의하다." 말하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이웃집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감정부터 올라오는 부모의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내 아이가 때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맞은 상처만 보고 화를 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회의 중에 싫어하던 사람이 의견을 내면 그 의견 자체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친한 사람이 의견을 내면 유연한 자세를 취하지요.
이처럼 편벽된 마음이 있으면 쉽게 눈이 가려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어떤 말을 하거나 무엇을 생각할 때 자신의 마음에 감정이나 사심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욱 공정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지요.
특히 자신이 직분상 윗사람이라면 더욱 근신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자신이 볼 때 치우치지 않게 분별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한 것도 남들이 보기에는 정과 욕심이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모든 것을 선하게 생각하고 진리로 분별하는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

주 안에서 긍휼함이 풍성히 임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힙니다. 무엇보다 무수한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어 '값진 구원의 열매'를 얻게 되지요. 또한 긍휼을 베푼 사람은 자신의 마음 안에도 선한 열매들을 맺습니다.
악인에게도 끝까지 선으로 행하는 것, 인내와 사랑의 간구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향이 열매에 속하지요. 이러한 선한 열매들로 인해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긍휼로 무수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당하셨기에 그 긍휼의 열매로 무수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지요. 십자가를 거꾸로 지기까지 복음을 전한 사도 베드로, 우레의 아들이라 불렸지만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요한 등 성경에 나오는 인물 외에도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긍휼로 맺힌 선한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으로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마 9:13 ; 히 13:16). 이러한 마음을 알아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고 구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는(시 37:4) 지혜를 발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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