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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5일 일요일 오전 6:29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3 - 사랑은 오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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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
       
 
  
 

'위로부터 난 지혜' 시리즈 5 -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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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4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7~18)


미국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한 피오렐로 라 과디아가 뉴욕시 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상점에서 빵을 훔치다 붙잡힌 노인이 기소되었습니다.
이 노인은 배가 고파 우는 아이들을 위해 빵에 손을 댔다고 자백했습니다. 사건의 경위를 들은 과디아 판사는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사정이 딱해도 남의 것을 훔친 행동은 잘못이므로 법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웃의 어려움을 방치한 시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므로 제가 10달러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하지요. 그리고는 중절모를 재판부 서기에게 내주며 "이곳에 계신 분들도 저처럼 벌금을 내고 싶으시다면 여기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모자를 돌리게 했습니다. 결국 노인은 벌금 10달러를 제외하고도 47달러를 받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죄인의 사정이 딱하다고 해도 판사의 입장에서는 법을 존중해야 합니다. 한편 그에게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기에 법을 지키면서도 노인을 구제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처럼 긍휼의 지혜가 풍성하면 우리 삶이 더 아름답고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1. '긍휼'과 '선한 열매'와의 관계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이뿐 아니라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가망이 없어 보이는 영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구원을 얻게 하려는 마음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의 바탕 위에서 상대의 입장과 마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지혜, 구원의 길로 이끄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지혜로 지쳐 있는 영혼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긍휼을 베풀 때 얻어지는 모든 열매가 '선한 열매'가 되므로 긍휼과 선한 열매는 하나의 짝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근본 마음이 긍휼 자체이기에 모든 사람이 회개할 기회를 얻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의 마음도 긍휼 자체이기에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요. 상한 갈대처럼 심령이 죄에 물들어 버린 사람이나 꺼져가는 심지처럼 구원의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도 끝까지 참아 주셨고(마 12:20), 세리나 창기와 같이 멸시받던 죄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권능을 베풀며 선한 일만 행하신 예수님을 대적한 사람들도 있었고,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넘긴 사람도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조차 외면하지 않으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지요.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바로 예수님께서 '긍휼을 통해 맺으신 선한 열매'입니다.


2. 생명을 살리는 긍휼의 지혜

긍휼은 단지 불쌍히 여기고 귀히 여기는 마음만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용서하고, 징계하며, 때를 좇아 구제도 합니다.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긍휼의 지혜에는 용서의 긍휼, 징계의 긍휼, 구제의 긍휼 등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1)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용서의 긍휼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긍휼히 여겨 용서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믿지 않는 남편이 핍박할 때 그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남편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지며 남편을 위해 사랑의 기도가 나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옳고 당연해도 믿음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이해하며 그 입장에서 생각할 때라야 지혜가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일꾼인데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속이는 사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 여기저기 말을 옮기는 사람,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볼 때 한편으로는 답답할 수도 있지만 이럴 때라도 상대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면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물론 잘못한 것을 무조건 용서하고 그냥 넘어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용서하는 것은 상대의 영혼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용서하는 것보다 책망하는 것이 상대를 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망받지 않고 넘어가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된 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상대의 마음을 여는 징계의 긍휼
용서와 징계는 상반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긍휼에 속한 징계는 사랑으로 하는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8절에 "…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할 때 징계도 하시지만 죄의 담이 많이 쌓여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면 징계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망을 피하고자 자기 잘못을 덮고 변명하기에 급급합니다. 혹은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난 것 때문에 낙심해 버리지요. 만일 낮아진 마음으로 잘못된 행동을 즉시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허물을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어려움 가운데서 회복시켜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의 허물을 알게 되어 권면이나 책망을 해야 할 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사랑의 권면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내 의와 틀 속에서 상대를 찌르는 것일 수도 있고, 교만한 마음으로 상대에 대해 가르치려 하고 내 뜻대로 주관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긍휼함이 없이 권면할 때는 상대가 듣지 않습니다. 이때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서 더욱 강한 말로 상대를 찌르며 책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책망은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인용해서 말한다고 해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상대에게 돌이키는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깨우쳐 주고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상하고 힘이 빠지게 만들지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잘해보려고 노력하다가도 감정 섞인 권면이나 비난을 들으면 낙심해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러므로 상대를 권면하거나 징계할 때는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하는 긍휼 가운데 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 생명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해야 하지요. 이런 마음이 되었을 때 필요하다면 징계해서라도 상대의 영혼을 진리 가운데로 이끌 수 있습니다. 상대를 염려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라면 책망할 때도 지혜롭게 합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실 때 먼저 잘한 일들을 칭찬해 주시고 잘못한 것을 깨우쳐 주시며 엄한 경고와 책망을 하신 뒤 또 다른 잘한 것을 칭찬해 주셨습니다(계 2:2~6). 책망으로 인해 상대가 힘을 잃지 않도록 칭찬거리를 남겨두었다가 다시 한번 격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사랑하여 권면하거나 책망할 일이 있다면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상대의 마음을 여는 지혜'를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3)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구제의 긍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만 하지 않고 실제로 도움의 손길을 베풉니다. 참된 긍휼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상대를 돕습니다(요일 3:18).
먼저, 복음을 알지 못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핍박받거나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돌아보아야 하지요. 이렇게 진실함으로 긍휼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심은 것보다 더 풍성한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눅 6:38).
그래서 구제하는 것이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라는 여 제자는 병으로 죽게 되었으나 그 선행과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결국 베드로의 기도로 다시 살아나는 축복을 받습니다.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대상을 잘 가려서 해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믿음의 가정을 구제해야 하지요(갈 6:10). 그런데 술이나 도박에 빠져 일하지 않는 경우에는 구제해 준다고 해도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법을 행하다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고 해서 자금을 대주거나 동업한다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을뿐더러 오히려 함께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나를 도운 사람들이 그랬지요(욘 1장).
용서나 책망도 영혼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구제 역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입니다. 만일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구제한다면 오히려 상대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3. 선한 열매가 가득한 긍휼의 지혜

주 안에서 긍휼함이 풍성히 임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힙니다. 무엇보다 무수한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어 '값진 구원의 열매'를 얻게 되지요. 또한 긍휼을 베푼 사람은 자신의 마음 안에도 선한 열매들을 맺습니다.
악인에게도 끝까지 선으로 행하는 것, 인내와 사랑의 간구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향이 다 열매에 속하지요. 이러한 선한 열매들로 인해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긍휼로 무수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당하셨기에 그 긍휼의 열매로 무수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지요. 십자가를 거꾸로 지기까지 복음을 전한 사도 베드로, 우레의 아들이라 불렸지만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요한 등 성경에 나오는 인물 외에도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긍휼로 맺힌 선한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으로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마 9:13 ; 히 13:16). 이러한 마음을 알아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상한 심령을 위로하고 구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는(시 37:4) 지혜를 발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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