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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5일 일요일 오전 6:04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3 - 사랑은 오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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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
       
 
  
 

'위로부터 난 지혜' 시리즈 4 - 양순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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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7~18)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축복받을 수 있도록 "계명을 지키라, 선을 행하라"고 당부하시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당장 눈앞의 유익을 좇아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 방법으로 얻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축복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며 선을 행하지요.
오직 하나님 뜻대로 선을 좇아 죄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화평을 좇는 사람은 관용과 양순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면서 임하는 넉넉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나오는 덕목이지요. 지난 호 '관용의 지혜'에 이어 오늘은 '양순의 지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양순'의 영적 의미

'양순'은 영적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말과 행함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과 진리로 가득하면 외적으로도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와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선하다고 해서 단순히 착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한 면이 있습니다. 영적인 선과 진리로 가득 찬 마음에는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진리로 이끌 수 있고 마음을 다스리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양순의 열매가 맺히지 않은 사람은 상대에게 맞춰서 상담해 준다고 해도 문제 해결은 그 순간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비슷한 문제를 들고 또 찾아옵니다. 그러나 양순의 열매가 맺히면 몇 마디 대화로도 상대의 상태를 분별해 생각하는 방향 자체를 선하게 바꿔줄 수 있으니 상대는 시원함과 평안함을 얻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따라서 '양순'은 단순히 착하고 순한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할 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깊은 선의 차원인 것입니다.


2. '양순'의 세 가지 특징

1)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로 문제의 핵심을 분별하여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유산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부모의 유산을 공평히 나누도록 자기 형에게 권면해 달라고 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십니다.
그가 탐심을 버리지 않는 한 형제간에 감정 상할 일이 또다시 생길 수 있고, 탐심을 버릴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물질의 축복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깨우쳐 주시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을 보면, 바벨론의 왕 벨사살이 잔치를 열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고 바벨론의 우상들을 찬양할 때 갑자기 왕궁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뜻 모를 글자를 씁니다. 왕은 이 글자를 해석하면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하지요.
결국 다니엘을 통해 교만한 왕의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며, 나라가 메데와 바사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벨사살 왕은 다니엘을 셋째 치리자로 삼을 뿐,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전히 향락을 즐기므로 나라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해 주셨고 다니엘의 지혜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니 아무런 유익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상담하는 것은 좋아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혜는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마음으로 받고 행해 자신부터 변화시킬 때라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선한 지혜로 주변을 변화시켜 나갈 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까지 은혜 가운데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도 잠잠히 하나님 뜻을 분별하며 자족합니다
양순의 마음을 이루면 모든 것이 풍요로울 때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빌 4:11~13). 낙심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모든 상황을 감내해 나가지요. 당면한 어려움보다 마음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불편한 기색을 바로 드러냅니다. 초조해하고 안색이 변해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지요.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기도 하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 역사는 더더욱 체험할 수 없으며 주변의 인심까지 잃고 맙니다.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당황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 뜻을 깨닫고자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은혜가 풍성하며 하나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늘 평안하지요. 더 나아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택하여 행합니다. 물론 전혀 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깊은 마음에는 요동함이 없으니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간의 신뢰가 진실할 때 멋지게 응답해 주시고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롬 8:28). 믿음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믿는다면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 안에서 자신이 갈 길을 찾아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순의 마음으로 범사에 자족하며 선을 좇아 행해 나가면 성령께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지금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혹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체험할 수 있는 '양순의 지혜'입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마땅히 행할 것 이상으로 행합니다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씀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범사에 더 좋은 것을 분별하여 행합니다. 하나를 명하셔도 하나님 마음에 맞추어 둘, 셋 혹은 그 이상을 해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 합 하다." 하시며 매우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많습니다. 한쪽은 진리, 다른 한쪽은 비진리라면 당연히 진리를 선택하겠지만 둘 다 진리라면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쪽을 택합니다. 하지만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께 더 영광되는 것을 택하지요. 어느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를 생각해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장을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서 나오는 음식 중에 우상 앞에 바쳐진 제물이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가증한 짐승들이 들어 있을 수 있기에 환관장에게 물과 채식만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감독하는 자에게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라고 제안했는데 결국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윤택하고 아름다웠지요. 이같이 하나님 앞에 더 옳고 선한 쪽을 택하려는 그들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단 1:17) 그들은 왕의 인정을 받아 높은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더 합한 쪽을 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선한 것을 택했는데도 현실적으로는 축복이 아니라 시련이 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하며, 이는 영적 담대함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지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양순의 지혜'가 임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환관장과 감독하는 자에게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그들이 얼마나 선하고 성실하게 행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감독하는 자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도록 평소에 선한 행함을 쌓았지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내보일 때 주변의 이해와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중요한 교회 행사에 참석하고 싶은데 직장의 업무 상황이나 휴가 일정이 맞지 않거나 가족 모임과 겹칠 수 있지요. 이러한 경우에 배려받기 위해서는 평소에 선을 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평소에는 자기 좋을 대로 행하다가 필요할 때만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영적 믿음도 아니며 자기 욕심에 불과할 뿐입니다.


3.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도 바울

1) 영혼을 실족시키지 않는 마음
사도 바울은 주님을 알기 전에도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으며, 주님을 만난 후에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도 누리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그는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게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고백하지요.
사도 바울이 사역할 당시 고린도 지역은 우상 숭배가 성행했습니다. 자연히 우상의 제물로 쓰인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 우상 앞에 바친 제물인 줄 모르고 사 먹는 경우가 있어서 성도들은 이것이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물론 먹기 전에 우상의 제물인 줄 알았다면, 안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먹어야 할 상황이라면 먹어도 죄가 되지는 않지요(롬 14장). 단순히 음식으로써 먹을 뿐, 우상 숭배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먹는 것 자체가 꺼림칙할 수 있고, 믿음 있는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우상 숭배에 동조하는 것으로 생각해 판단 정죄할 수 있습니다. 혹은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우상의 제물을 먹으니까 나도 괜찮겠지.' 하면서 거리낌 없이 먹을 수도 있지요. 단순히 음식물로 생각하고 먹으면 상관이 없지만, 우상의 제물로 생각하고 양심에 찔리면서 먹으니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행하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 거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롬 14:23). 또한 '그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 거듭해 나간다면 양심이 점점 무뎌져 나중에는 큰 죄를 범하면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얼마든지 믿음으로 먹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이를 본 사람이 실족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2) 마땅히 쓸 권리를 쓰지 않는 마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고 자족하며 살았습니다.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는 권리,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쓰지 않았지요. 일하지 않고 마땅히 얻을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였는데, 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성도들을 사랑해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울을 기뻐하시고 다른 사도들보다 더 큰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양순의 마음을 온전히 이루면 항상 선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에 가득한 선이 말과 행함 가운데 저절로 배어 나옵니다. 범사에 본이 되어야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은 더욱 양순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할 때가 있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되 늘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한다고 해도 '이것이 옳은 일인가? 하나님 앞에 더 합한 것인가?' 하며 겸비하게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쪽을 택해 나갈 때 더욱 온전케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당장 온전하여지라고 요구하지는 않으시지만, 스스로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을 택할 수 있다면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더 나아가 사심이 없는 만큼 모든 것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로 인해 기쁨을 얻기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이상의 축복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에 장차 천국에 이르게 되면 사랑의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영광의 그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택하는 양순의 지혜를 받아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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