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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0일 화요일 오후 8:59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11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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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4~26) ...
       
 
  
 

'위로부터 난 지혜' 시리즈 3 - 관용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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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6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7~18)


바둑도 훈수하는 사람이 세 수를 더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두는 사람의 실력이 더 낫다고 해도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쉬운 것도 못 보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훈수하는 사람은 승패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그만큼 여유 있고 시야가 넓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안다고 해도 자기 유익을 구할 때는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옳은 것을 쉽게 분별할 수 있고, 진리를 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진리의 길이 밝히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관용의 열매로 얻는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1. '관용'의 영적 의미

사전을 보면 '관용'에 대해 '너그럽게 용서하고 용납함'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 의미는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으므로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렇게 자신을 다 내어주기 위해서는 사심이 없고 진리가 마음에 가득해야 합니다.
풍성한 진리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가장 좋은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그 마음이 온전한 진리 자체였고,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고 쉬시지 못하면서도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지요. 영혼들을 위해 많은 수고와 눈물을 쏟으셨고, 결국은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죄와 허물이 없는 분이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다 내어주심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해 천국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아브람의 행함을 통해서도 관용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축복받아 가축이 많아지자 제한된 땅에서 풀과 물을 얻어야 하니 종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다툼을 없애기 위해 따로 살기로 결단하고 조카 롯이 먼저 갈 곳을 택하면 자신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하지요(창 13:9). 그러자 롯은 물이 넉넉하고 기름진 땅을 선뜻 고릅니다. 롯이 받은 축복은 엄밀히 말하면 아브람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아브람이 함께하므로 롯의 소유도 더불어 불어났지요. 더구나 롯은 아랫사람으로서 종들을 단속해서 삼촌이 마음 쓰지 않도록 처신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롯은 그러지 않았고 땅도 먼저 선택했지요.
그런데도 아브람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내어주고 더 달라고 해도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모든 땅과 티끌처럼 수많은 자손을 주리라는 약속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람은 넘치는 관용을 베풀 뿐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 이상의 선을 행했기에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것을 지켜야 똑똑하다고 하며,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려야 하고 하나를 주면 그 이상을 받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고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이며 참된 지혜입니다(행 20:35).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혈기, 욕심 등이 있는 만큼 관대한 모습은 나올 수 없습니다. 당장 귀찮고 짜증 나는 것을 이기지 못하니 감정이 드러나지요.
그래서 관용의 영적 의미를 그냥 '자신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 하지 않고 '마음에 진리가 풍성하게 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2. 관용의 지혜로 누리는 복

진리로 마음을 넉넉하게 하여 자신을 내어주며 섬기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혜가 됩니다. 마음에 진리를 가득 채워 넉넉한 관용을 이루면 내 것을 나눠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남이 나보다 잘되는 것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더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으며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해하지도 않지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고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된다'는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교회를 개척하여 넉넉하지 않을 때도 다른 개척교회들을 지원했습니다. 쓸 것을 아끼고 아껴서 세계 선교와 영혼 구원을 위해 투자했지요. 속옷을 달라는 사람이 있어도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겉옷까지 주었고, 애매하게 오른뺨을 맞아도 화평을 좇을 수 있다면 왼뺨까지 대주었습니다.
때로는 속이는 줄 알면서도 속아 주었지요. 대항할 힘이 없어서 맞은 것도 아니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내어준 것도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하려는 마음이 간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짧은 시일 안에 대형 교회로 성장시켜 주셨고, 교회는 갈수록 더 풍성하고 넉넉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을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내어줄 때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헛수고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 사랑받게 되지요.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을 때(고후 12:15) 디모데와 같이 그를 아버지로 여기며 사랑하는 일꾼들이 나왔고,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 줄 정도로 그를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생겼습니다(갈 4:15). 진리를 밝히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임하여 영혼들을 살리고 상한 심령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3. 관용에서 나오는 진리의 자유함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기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관용'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진리의 자유함'이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말씀했듯이 진리를 사랑하고 행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하나님의 법이 사랑이며 축복의 통로임을 알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부담스럽게 들립니다. 안식일에는 영업하지 말라 하거나, 세상 오락을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족쇄처럼 느껴지지요. 그러나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이런 말씀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으로, 자신이 평안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라는 진리를 알고 행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고 늘 지킴 받으니 삶이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다른 예로, 미움을 버리면 마음이 가볍고 행복해집니다. 진리가 죄의 멍에에서 풀어주고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가 마음에 가득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해서도 자유함을 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진리대로 살지 않는다고 내 생각에 맞춰 정죄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진리대로 살아갈 힘을 줍니다. '마음에 진리가 가득하다'는 것은 진리를 머리로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을 알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되지요(고전 8:1). 상대가 섬김 받기를 원하는 모습을 보면 금방 판단 정죄하지만 정작 자신이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합니다.
반면 마음에 진리가 임한 사람은 상대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바라봐줍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지만, 상대의 허물과 비진리를 사랑으로 품고 덮어주지요. 예전에는 수많은 허물이 있었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처럼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4. 관용의 마음을 이룰 때 임하는 명철

진리가 풍성히 임하고 진리의 자유함 속에 넉넉한 마음이 되면, 범사에 밝은 길을 볼 수 있는 '명철'이 임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자유함 속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유대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묻습니다.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 말씀하시면, 그들은 평소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용서하라" 하시면, "구약의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라 정죄할 것이지요. 이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 없이 바닥에 무언가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답변을 재촉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땅에 쓰기를 계속하셨지요.
군중은 예수님께서 쓰시는 것을 보면서 차마 돌을 던질 수 없었습니다. 바닥에 쓰인 내용은 자신들에게 해당하는 죄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결국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시지요. 이 말씀은 수치와 두려움 속에 떨다가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여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알아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죄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긍휼을 베푸는 관용의 마음도 있었기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며 하나님의 참뜻을 깨우칠 수 있는 지혜를 나타내셨지요. 예수님께 조금이라도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답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여인이 불쌍하다고 해서 무조건 "살려 주라" 하셨다면, "율법을 거역하도록 가르친다"는 정죄를 받아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겠지요. 또한 모든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지만 죄인이 불쌍하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죄가 누룩처럼 퍼져 더 많은 사람이 멸망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형벌을 정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이루셨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에 모든 사람을 살리는 지혜를 나타내실 수 있었습니다(딤전 2:4).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할 지혜는 예수님께서 군중의 잘못을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고 바닥에 쓰셨다는 데 있습니다. 모여든 사람을 대놓고 판단 정죄하여 그들의 마음에 찔림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을 정통으로 찌를 때에는 반발이 생긴다는 것을 아셨기에 다만 바닥에 쓰인 자신의 죄목들을 보고 스스로 깨달아 물러가게 하셨지요.
관용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비록 상대가 악으로 행한다고 해도 판단, 정죄하지 않으며 그를 소중한 영혼으로 여기고 진리로 이끌어 주지요. 이러한 마음을 이룰 때 상대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관용으로부터 얻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면 연약한 이들을 돌아보고 이웃을 기쁘게 하며 선한 행함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롬 15:1~2). 주 안에서 넉넉한 관용의 마음을 이루어 선한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서 자랑할만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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