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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오후 2:56
 
 

'위로부터 난 지혜' 시리즈 2 - 화평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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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7~18) ...
       
 
  
 

'선' 시리즈 14 - 엘리야의 선(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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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4일 일요일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열왕기하 2:11)


엘리야는 B.C. 9세기경 우상숭배가 만연한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방신을 섬기는 850인과 대결해 믿음으로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렸고, 간절한 기도로써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이 외에도 사르밧 과부로부터 떡 한 조각을 공궤 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주었으며, 죽은 아이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요단강을 가르기도 하고 앞일에 대해 밝히 예언하기도 했지요.
마침내 엘리야 선지자는 죽음을 보지 않은 채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습니다. 여기서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 말씀한 대로 사망 곧 죽음이라는 것은 죄의 대가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만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경작 받은 피조물로서는 최고의 서열에 오를 수 있었지요. 그렇다면 엘리야 선지자는 어떠한 선의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권능으로 함께하시며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을까요?


1. 겸비한 마음과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마음

엘리야는 원래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자기 의견을 관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엘리야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마음이었지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러한 마음의 선을 인정하여 택하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와 이방인 선교에 앞장선 사도 바울은 육적으로 매우 담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래도 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이기까지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기 위해서는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연단을 통해 마음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본래 성품이 심히도 유약하고 자존심이나 들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도 '나는 부족한데 어찌 하나님 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나님 일을 어그러뜨리면 안 되는데….'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요. 그만큼 자신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겸비한 것은 좋으나,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쓰이려면 그 유약함이 영으로 변화되어야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엘리야가 활동했던 시대는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라 할 수 있는 아합이 통치하고 있었지요. 아합왕의 아버지 오므리는 군사적, 상업적 동맹을 유지하고자 아합을 이방 나라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시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 신이 북이스라엘에 퍼져 온 나라가 우상숭배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가 크게 임하지요. 바로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라고 엘리야에게 첫 번째 사명을 주십니다(왕상 17장). 그리고 엘리야에게 왕을 피해 숨을 곳을 지정해 주시지요. 아합왕이 그 말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려 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그릿 시냇가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에게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뭄은 시작되었지요.
가뭄이 시작된 지 3년 반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비를 내릴 것이니 이번에는 아합왕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임한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아합왕에게 붙잡히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마음이 유약한 엘리야에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갔고 하나님 뜻을 분명히 전달하였습니다. 나아가 불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대결을 위해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달라고 아합왕에게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왕상 18:19).


2.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의 끈을 놓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

엘리야가 자신의 유약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늘 교통하기를 힘썼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달으려고 했지요. 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겸비한 마음으로 늘 하나님 앞에 구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 능력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힘썼습니다.
이를 통해 엘리야는 자신의 유약함을 극복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함과 능력으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체험을 통해 '사람의 생각으로 바라볼 때는 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면 능히 된다'는 믿음이 확고해졌지요.
그렇다고 단번에 유약함이 벗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끈을 놓지 않고 붙잡으니 승리할 수 있었고, 결국은 하나님 능력으로 강함이 입혀진 것입니다.
연단을 받은 후 엘리야는 "내가 이같이 부족한 자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는 능히 할 수 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믿음 안에서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낼 수 있었지요.
엘리야가 큰 권능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도 육의 한계 속에 있는 자신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 뜻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들을 육의 공간에서도 나타내실 수 있었지요(왕상 18:46).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택해 쓰시고자 하실 때, 굳이 육적으로 능력이 많은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분의 능력을 받아 나타낼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 안에 '자기'가 많이 담겨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 주신다고 해도 마음 그릇 안에 담긴 '자기'와 섞여서 순수한 하나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릇은 먼저 '자기'가 온전히 비워진 깨끗한 그릇, 마음이 겸비한 그릇입니다. 또한 자기가 온전히 비워진 깨끗한 그릇이라 해도 바닥이 깊은 그릇이 많이 담기듯 자신의 마음을 겸비하게 낮추면 낮출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이 임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중심에서 고백했고, 하나님과 교통의 끈을 놓지 않았지요. 또한 성령이 마음에 임하지 않은 구약시대라 해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음으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주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았는데, 혹여 서로 부딪치고 불편해하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모든 죄와 허물을 주님의 보혈로 용서하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밝히 분별하되 주님을 본받아 상대를 사랑으로 감싸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신 것처럼 설령 나 보기에 의롭지 못한 상대라 할지라도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스스로 겸비하게 낮추는 마음 자세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를 택하여 보배를 담는 그릇이 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겸비하게 자신을 낮춤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금 그릇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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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남선교회총연합회
 
기획.특집
[기획특집] "권능의 기도로 에볼라가 종식된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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