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¹Î´º½º, ¸¸¹Î, ¸¸¹Î±³È¸, ¸¸¹Î´º½º, ÀÌÀç·Ï, Àç·Ï, ´ÚÅ͸®
2024ë…„ 5ì›” 17ì¼ ê¸ˆìš”ì¼ ì˜¤í›„ 12:2
 
 

ì˜ì¸ì€ 믿ìŒìœ¼ë¡œ 살리ë¼
ÃֽŠ¾÷µ¥ÀÌÆ®
"ê·¸ ì¼ í›„ì— í•˜ë‚˜ë‹˜ì´ ì•„ë¸Œë¼í•¨ì„ 시험하시려고 그를 ë¶€ë¥´ì‹œë˜ â€¦ 네 아들 네 사랑하는 ë…ìž ì´ì‚­ì„ ë°ë¦¬ê³  모리아 땅으로 가서 ë‚´ê°€ 네게 지시하는 í•œ ì‚° 거기서 그를 번제로 ë“œë¦¬ë¼ â€¦
ê·¸ 아들 ì´ì‚­ì„ 결박하여 단 나무 ìœ„ì— ë†“ê³  ì†ì„ 내밀어 ì¹¼ì„ ìž¡ê³  ê·¸ ì•„ë“¤ì„ ìž¡ìœ¼ë ¤ 하ë”니 …
ê·¸ ìˆ˜ì–‘ì„ ê°€ì ¸ë‹¤ê°€ ì•„ë“¤ì„ ëŒ€ì‹ í•˜ì—¬ 번제로 드렸ë”ë¼"(창세기 22:1~13) ...
       
 
  
 

ìžë¹„ì˜ ì—´ë§¤_ 'ì„±ë ¹ì˜ ì•„í™‰ 가지 열매' 시리즈 6


5898
2019ë…„ 6ì›” 2ì¼ ì¼ìš”ì¼


당회장 ì´ìž¬ë¡ 목사


"ì˜¤ì§ ì„±ë ¹ì˜ ì—´ë§¤ëŠ” 사랑과 í¬ë½ê³¼ í™”í‰ê³¼ 오래 ì°¸ìŒê³¼ ìžë¹„와 ì–‘ì„ ê³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ì´ ê°™ì€ ê²ƒì„ ê¸ˆì§€í•  ë²•ì´ ì—†ëŠë‹ˆë¼" - ê°ˆë¼ë””ì•„ì„œ 5:22~23 -


ì‚¬ëžŒë“¤ì€ ì¢…ì¢… "아무리 좋게 ì´í•´í•˜ë ¤ í•´ë„ ì € ì‚¬ëžŒì€ ë„저히 ì´í•´í•  수 없다" 하거나 "아무리 용서하려 í•´ë„ ì € ì‚¬ëžŒë§Œì€ ìš©ì„œí•  수가 없다"ê³  ë§í•©ë‹ˆë‹¤. 하지만 ìžë¹„ì˜ ë§ˆìŒì´ 있으면 ì´í•´í•˜ì§€ 못하거나 용서하지 못할 ì‚¬ëžŒì´ ì—†ì§€ìš”. ì–´ë–¤ 사람ì´ë¼ë„ 선으로 ì´í•´í•  수 있고 사랑으로 í¬ìš©í•  수 있습니다. 그러면 ì„±ë ¹ì˜ ì•„í™‰ 가지 열매 ì¤‘ì— í•˜ë‚˜ì¸ 'ìžë¹„'ì— ëŒ€í•´ 살펴보겠습니다.


1. ìžë¹„ì˜ ì—´ë§¤ëž€ 무엇ì¸ê°€?

ìžë¹„(慈悲)는 사전ì ìœ¼ë¡œ 'ë‚¨ì„ ê¹Šì´ ì‚¬ëž‘í•˜ê³  가엾게 여기는 마ìŒ'ì´ë¼ê³  ì •ì˜í•©ë‹ˆë‹¤. 그러나 ì˜ì ì¸ ì˜ë¯¸ë¡œëŠ” 사람으로서 ë„저히 ì´í•´í•  수 없는 ì‚¬ëžŒë„ ì§„ë¦¬ 안ì—ì„œ 능히 ì´í•´í•˜ê³ , 용서할 수 없는 ì‚¬ëžŒë„ ì§„ë¦¬ 안ì—ì„œ 용서하는 마ìŒìž…니다.
하나님께서는 ì¸ìƒë“¤ì„ ì´ëŸ¬í•œ ìžë¹„ì˜ ë§ˆìŒìœ¼ë¡œ ê¸íœ¼ížˆ 여기십니다. ë¿ë§Œ ì•„ë‹ˆë¼ ì˜ì›í•œ 사ë§ì—ì„œ 구ì›í•˜ì‹œê¸° 위해 ë…ìƒìž ì˜ˆìˆ˜ë‹˜ì˜ ìƒëª…까지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ì œìžë“¤ì—게 "ë„ˆí¬ ì•„ë²„ì§€ì˜ ìžë¹„í•˜ì‹¬ê°™ì´ ë„ˆí¬ë„ ìžë¹„하ë¼"(눅 6:36)ê³  당부하셨습니다.
ìžë¹„ì˜ ë§ˆìŒì€ 사랑과 비슷한 것 ê°™ìœ¼ë©´ì„œë„ ë‹¤ë¦…ë‹ˆë‹¤. ì˜ì ì¸ ì‚¬ëž‘ì´ ìžê¸° 유ìµì„ 구하지 ì•Šê³  아무런 대가 ì—†ì´ í¬ìƒí•  수 있는 마ìŒì´ë¼ë©´, ìžë¹„는 용서와 í¬ìš©ì˜ ì„±ê²©ì´ ë” ê°•í•©ë‹ˆë‹¤. ë„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ì´ë¼ë„ 모든 ê²ƒì„ ê°ì‹¸ 줄 수 있는 마ìŒì´ì§€ìš”. ë‚´ ìƒê°ê³¼ 맞지 않다고 미워하거나 멀리하는 ê²ƒì´ ì•„ë‹ˆë¼ ê¸íœ¼ížˆ 여기며 힘과 위로가 ë˜ì–´ ì£¼ê³ ìž í•©ë‹ˆë‹¤.
ìš”í•œë³µìŒ 8ìž¥ì— ë³´ë©´, 서기관과 바리새ì¸ë“¤ì´ ê°„ìŒ ì¤‘ì— ìž¡ížŒ ì—¬ìžë¥¼ ëŒê³  와서 예수님께 율법ì—는 ëŒë¡œ 치ë¼ê³  í•˜ëŠ”ë° ì–´ë–»ê²Œ 하겠ëŠëƒê³  묻습니다. ê·¸ëŸ¬ìž ì˜ˆìˆ˜ë‹˜ê»˜ì„œëŠ” ë§ì—†ì´ ë•…ì— ë¬´ì–¸ê°€ ì“°ì‹œë”니 "ë„ˆí¬ ì¤‘ì— ì£„ 없는 ìžê°€ 먼저 ëŒë¡œ 치ë¼"(ìš” 8:7) 하시지요. ê·¸ ë§ì”€ì— ì–‘ì‹¬ì˜ ê°€ì±…ì„ ë°›ì€ ì‚¬ëžŒë“¤ì€ í•˜ë‚˜ë‘˜ 떠났고, 홀로 ë‚¨ì€ ì—¬ì¸ì—게 예수님께서는 "ë‚˜ë„ ë„ˆë¥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ë§ë¼"(ìš” 8:11) 당부하십니다. 곧 용서할 수 없는 죄임ì—ë„ ìš©ì„œí•¨ìœ¼ë¡œì¨ ì—¬ì¸ì—게 ëŒì´í‚¬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ì´ì²˜ëŸ¼ ìžë¹„는 진정한 ìš©ì„œ, 곧 ì›ìˆ˜ê¹Œì§€ë¼ë„ 사랑할 수 있는 마ìŒìž…니다. 설령 ì–´ë–¤ 사람ì—게 í° í—ˆë¬¼ì´ ìžˆë‹¤ í•´ë„, í˜¹ì€ ì¤‘í•œ 죄를 ì§€ì€ ê²ƒì´ ë“œëŸ¬ë‚¬ë‹¤ í•´ë„ íŒë‹¨í•˜ê³  정죄하기보다 ê¸íœ¼ì˜ 마ìŒì´ 앞서지요. 죄는 ë¯¸ì›Œí•˜ë˜ ì‚¬ëžŒì€ ë¯¸ì›Œí•˜ì§€ ì•Šê³ , 오히려 ìƒëŒ€ë¥¼ ì´í•´í•´ 주며 ì‚´ë¦¬ê³ ìž í•˜ëŠ” 것입니다.


2. ìžë¹„ì˜ ì—´ë§¤ë¥¼ ë§ºì€ ì‚¬ëžŒì˜ íŠ¹ì§•

1) íŽ¸ê²¬ì´ ì—†ìŠµë‹ˆë‹¤

야고보서 2장 1~4ì ˆì— "… ì‚¬ëžŒì„ ì™¸ëª¨ë¡œ 취하지 ë§ë¼ ë§Œì¼ ë„ˆí¬ íšŒë‹¹ì— ê¸ˆê°€ë½ì§€ë¥¼ ë¼ê³  아름다운 ì˜·ì„ ìž…ì€ ì‚¬ëžŒì´ ë“¤ì–´ì˜¤ê³  ë˜ ë”러운 ì˜·ì„ ìž…ì€ ê°€ë‚œí•œ ì‚¬ëžŒì´ ë“¤ì–´ì˜¬ ë•Œì— ë„ˆí¬ê°€ 아름다운 ì˜·ì„ ìž…ì€ ìžë¥¼ ëŒì•„ë³´ì•„ ê°€ë¡œë˜ ì—¬ê¸° ì¢‹ì€ ìžë¦¬ì— 앉으소서 하고 ë˜ ê°€ë‚œí•œ ìžì—게 ì´ë¥´ë˜ 너는 거기 섰든지 ë‚´ ë°œë“±ìƒ ì•„ëž˜ ì•‰ìœ¼ë¼ í•˜ë©´ 너í¬ë¼ë¦¬ 서로 구별하며 ì•…í•œ ìƒê°ìœ¼ë¡œ íŒë‹¨í•˜ëŠ” ìžê°€ ë˜ëŠ” ê²ƒì´ ì•„ë‹ˆëƒ" ë§ì”€í•©ë‹ˆë‹¤.
베드로전서 1장 17ì ˆì—는 "외모로 보시지 ì•Šê³  ê° ì‚¬ëžŒì˜ í–‰ìœ„ëŒ€ë¡œ íŒë‹¨í•˜ì‹œëŠ” ìžë¥¼ 너í¬ê°€ ì•„ë²„ì§€ë¼ ë¶€ë¥¸ì¦‰ 너í¬ì˜ 나그네로 ìžˆì„ ë•Œë¥¼ ë‘려움으로 지내ë¼" 했습니다. 우리 마ìŒì— ìžë¹„ì˜ ì—´ë§¤ê°€ 맺히면 ìƒëŒ€ì˜ ê²‰ëª¨ìŠµì„ ë³´ê³  íŒë‹¨í•˜ê±°ë‚˜ 정죄하는 ì¼ì´ 없지요.
그렇다면 ì˜ì ì¸ ë©´ì—ì„œë„ íŽ¸ê²¬ì´ ì—†ëŠ”ì§€ 살펴보아야 합니다. ì‹ ì•™ìƒí™œì„ 오래 했는ë°ë„ ì˜ì ì¸ 깨달ìŒì´ 둔한 ì‚¬ëžŒì´ ìžˆìŠµë‹ˆë‹¤. 성장 과정 ì¤‘ì— ê²°ì—¬ëœ ë¶€ë¶„ì´ ìžˆì–´ì„œ ë¶„ìœ„ê¸°ì— ë§žì§€ 않는 엉뚱한 ë§ì„ 하거나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ì´ë„ 있고, ì£¼ì˜ êµì–‘ì—ì„œ 벗어나는 í–‰ë™ì„ ìžì£¼ 하는 ì‚¬ëžŒë„ ìžˆì§€ìš”. ì´ëŸ° ì‚¬ëžŒë“¤ì„ ëŒ€í•  ë•Œ "아휴, 답답해. 왜 ì €ê²ƒë°–ì— ìƒê°ì„ 못할까" 하며 무시하고 멀리하는 마ìŒì€ 없는지요?
ë˜ëŠ” ìƒëŒ€ë¥¼ 찌르는 ë§ì´ë‚˜ 무례한 태ë„ë¡œ 무안하게 만드는 ì¼ì€ 없으십니까? ì–´ë–¤ ì‚¬ëžŒë“¤ì€ ë²”ì£„í•œ ì´ë“¤ì„ ë³¼ ë•Œ 마치 ìžì‹ ì´ 재íŒê´€ì¸ 것처럼 정죄하고 수군수군합니다. 하지만 ìžë¹„ì˜ ë§ˆìŒì´ 있으면 범죄하여 하나님 ì•žì— ì§•ê³„ë°›ëŠ” ì‚¬ëžŒì„ ë³¼ ë•Œì—ë„ ê¸íœ¼ížˆ 여기며 그가 잘 ì´ê²¨ë‚´ê¸°ë¥¼ ì›í•©ë‹ˆë‹¤.

2) ì–´ë ¤ì›€ì— ì²˜í•œ ì‚¬ëžŒì„ ê¸íœ¼ížˆ 여기며 구제합니다

ìžë¹„ì˜ ì—´ë§¤ë¥¼ 맺으려면 ê³¤ëž€ì„ ê²ªëŠ” ì‚¬ëžŒì„ ë§ˆìŒìœ¼ë¡œë§Œ 불ìŒí•´í•˜ê³  ë§ë¡œë§Œ "힘내세요" 하는 ê²ƒì´ ì•„ë‹ˆë¼ ì–´ì°Œí•˜ë“  실질ì ì¸ íž˜ì´ ë˜ì–´ 주려는 í–‰í•¨ì´ ìžˆì–´ì•¼ 합니다(약 2:15~16 ; ìš”ì¼ 3:17~18).
ì–´ë–¤ 문제로든 고통받는 ì‚¬ëžŒì„ ë³´ë©´ ìƒëŒ€ì—게 ë„ì›€ì´ ë˜ê¸° ì›í•˜ê³  ê³ í†µì„ ëœì–´ 주기 ì›í•˜ëŠ” ê²ƒì´ ìžë¹„ì˜ ë§ˆìŒìž…니다. ë”구나 ì£¼ë‹˜ì„ ë¯¿ì§€ 않으므로 ì§€ì˜¥ì— ê°ˆ ì˜í˜¼ë“¤ì„ ë³¼ 때는 어찌하든 구ì›ì˜ 길로 ì¸ë„하기 위해 마ìŒì„ ì”니다.
저는 ê°€ë‚œì˜ ê³ í†µì„ ì ˆì‹¤ížˆ 겪어 봤고, 질병으로 소ë§ì´ ëŠì–´ì§€ëŠ” ê³ í†µë„ ì²˜ì ˆí•˜ê²Œ ì²´í—˜í–ˆê¸°ì— ì´ëŸ° 문제들로 고통받는 ì‚¬ëžŒë“¤ì„ ë³¼ 때면 ì œ ìžì‹ ì˜ ì¼ì²˜ëŸ¼ ëŠë‚니다. 어찌하든 문제를 í•´ê²°í•´ 주고 싶고, 만나는 사람마다 ì§€ì˜¥ì˜ í˜•ë²Œì—ì„œ 벗어나 천국으로 ê°ˆ 수 있ë„ë¡ ì¸ë„하는 ê²ƒì´ ì œ 소ì›ì´ì§€ìš”.
그래서 ê¸°ë„ ëì— ì–»ì€ ë‹µì´ ë°”ë¡œ í•˜ë‚˜ë‹˜ì˜ ê¶ŒëŠ¥ì´ì—ˆìŠµë‹ˆë‹¤. 모든 ì‚¬ëžŒì˜ ê°€ë‚œê³¼ 질병, 온갖 재앙과 ê³ ë‚œì„ ì¼ì¼ì´ í•´ê²°í•´ 줄 수 없다 í•´ë„ ê·¸ë“¤ì´ í•˜ë‚˜ë‹˜ì„ ë§Œë‚˜ê³  체험하면 ë˜ê¸°ì— í•œ ì˜í˜¼ì´ë¼ë„ ë” í•˜ë‚˜ë‹˜ì„ ë§Œë‚˜ê³  체험할 수 있ë„ë¡ ë” í° ê¶ŒëŠ¥ì„ ë³´ì—¬ ì£¼ê³ ìž í–ˆì§€ìš”.
물론 ê¶ŒëŠ¥ì„ ë³´ê³  믿ìŒì„ 가졌다 í•´ë„ ê·¸ë“¤ì´ ë“ ë“ í•œ ë¯¿ìŒ ìœ„ì— ì„¤ 때까지는 ì˜ìœ¡ ê°„ì— ì§€ì†ì ì¸ ë³´ì‚´í•Œì´ í•„ìš”í•˜ê¸°ì— êµíšŒì ìœ¼ë¡œ ìž¬ì •ì´ ë„‰ë„‰í•˜ì§€ ì•Šì„ ë•Œë„ ìµœì„ ì„ ë‹¤í•´ 구제했습니다.

3) ìƒëŒ€ë¥¼ 함부로 지ì í•˜ì§€ 않습니다

우리가 ìƒëŒ€ë¥¼ 사랑한다면 때로는 지ì ì´ë‚˜ ì±…ë§ë„ 해야 합니다. 무조건 ë®ì–´ 주고 용서한다면 ìƒëŒ€ê°€ ìž˜ëª»ë  ìˆ˜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ìžë¹„ì˜ ë§ˆìŒì´ 있다면 징계나 ì±…ë§, 지ì ë„ 쉽게 하지 못합니다.
한마디 지ì ì„ 한다 í•´ë„ ê¸°ë„하는 마ìŒìœ¼ë¡œ ìƒëŒ€ì˜ 마ìŒì„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ë§í•˜ëŠ” ê²ƒì„ ë³¼ 수 있습니다(ìž  12:18). 특히 성ë„ë“¤ì„ ê°€ë¥´ì¹˜ëŠ” ìž…ìž¥ì— ìžˆëŠ” 사람ì´ë¼ë©´ ë”ë”ìš± 주ì˜í•´ì•¼ 합니다. 아무리 맞는 ë§ì´ë¼ í•´ë„ ìžê¸° ì˜ì™€ í‹€ ì†ì—ì„œ ì˜ì ì¸ ì‚¬ëž‘ì´ ì—†ì´ ì§€ì í•  때는 ìƒëŒ€ê°€ 변화ë˜ëŠ” ê²ƒì´ ì•„ë‹ˆë¼, 마ìŒì— ìƒì²˜ë¥¼ 받고 낙심하여 íž˜ì„ ìžƒì–´ë²„ë¦´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바리새ì¸ê³¼ 서기관들처럼 ì±…ë§ì„ 받지 못할 사람들ì—게 "ë…ì‚¬ì˜ ìžì‹ë“¤ì•„", "외ì‹í•˜ëŠ” ìžë“¤ì•„" 하고 ì±…ë§í•˜ê¸°ë„ 하셨습니다. 그중 í•œ 사람ì´ë¼ë„ 듣고 ëŒì´í‚¬ 수 있ë„ë¡ ê¸°íšŒë¥¼ 주신 것ì´ì§€ìš”. ë˜ ê·¸ë“¤ì€ ê°€ë¥´ì¹˜ëŠ” 입장ì´ì—ˆê¸°ì— 백성들ì´ë¼ë„ 깨닫고 ê·¸ë“¤ì˜ ì™¸ì‹ì— 미혹ë˜ì§€ 않게 하시려는 마ìŒì´ 담겨 있습니다.
ì´ì²˜ëŸ¼ 특별한 경우가 아니ë¼ë©´ 아무리 부족한 사람ì´ë¼ë„ 찌르는 ë§ì´ë‚˜ í—ˆë¬¼ì„ ë“¤ì¶°ë‚´ ìƒì²˜ë¥¼ 주거나 실족시키는 ì¼ì´ 없어야 합니다. ê¼­ 필요한 ìƒí™©ì—ì„œ ê¶Œë©´ì„ í•œë‹¤ í•´ë„ ìƒëŒ€ì˜ 입장ì—ì„œ ê·¸ ì˜í˜¼ì„ 소중히 여기는 마ìŒìœ¼ë¡œ 지혜롭게 í•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4) 모든 사람ì—게 관대하고, ìƒëŒ€ì—게 ê³µì ì„ ëŒë¦½ë‹ˆë‹¤

ì–´ë–¤ 대가를 ì–»ê³ ìž í•˜ëŠ” ë§ˆìŒ ì—†ì´ ë‚´ ê²ƒì„ ë‚´ì¤„ ë•Œ ìžë¹„ì˜ ì—´ë§¤ë¥¼ ë§ºì„ ìˆ˜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ë°°ì‹ í•  ê²ƒì„ ì²˜ìŒë¶€í„° 아셨지만 ì•„ë‚Œì—†ì´ ì‚¬ëž‘ì„ ì£¼ì…¨ìŠµë‹ˆë‹¤. ë까지 그를 ê³ì— ë‘시고 다른 ì œìžë“¤ê³¼ ë˜‘ê°™ì´ ëŒ€í•˜ì…¨ì§€ìš”. 어찌하든 그가 회개할 수 있ë„ë¡ ê¸°íšŒë¥¼ 주신 것입니다. ì‹­ìžê°€ì— 못 박히실 ë•Œë„ ì˜¤ížˆë ¤ 못 박는 ì‚¬ëžŒë“¤ì„ ìœ„í•´ 기ë„하셨지요(눅 23:34).
ì´ì²˜ëŸ¼ ë„무지 용서할 수 없는 ì‚¬ëžŒë„ ëŠ¥ížˆ 용서하는 마ìŒì´ ìžë¹„ì¸ ê²ƒìž…ë‹ˆë‹¤. 스ë°ë°˜ì€ 설êµë¥¼ 듣고 ì–‘ì‹¬ì— ì°”ë¦° 유대ì¸ë“¤ì— ì˜í•´ ëŒì— 맞아 ì£½ì–´ê°€ë©´ì„œë„ "주여 ì´ ì£„ë¥¼ 저들ì—게 ëŒë¦¬ì§€ 마옵소서" 하며 ê·¸ë“¤ì„ ìœ„í•´ 기ë„하였습니다. ì´ëŠ” ì´ë¯¸ ê·¸ë“¤ì„ ìš©ì„œí–ˆë‹¤ëŠ” ì¦ê±°ì´ë©°, 마ìŒì— ì–´ë–¤ ë¯¸ì›€ë„ ì—†ê³  오히려 ê·¸ë“¤ì„ ë¶ˆìŒížˆ 여기는 ìžë¹„ì˜ ì—´ë§¤ê°€ 온전히 맺혀 있ìŒì„ 나타냅니다.
ìžë¹„ì˜ ì—´ë§¤ë¥¼ 맺으려면 아무리 성격과 ì˜ê²¬ì´ 맞지 않는다 í•´ë„ ìƒëŒ€ë¥¼ í’ˆì„ ìˆ˜ 있어야 합니다. ìƒëŒ€ì˜ 입장ì—ì„œ ìƒê°í•´ ë³´ë©´ ì‹«ì€ ëŠë‚Œì„ 바꿀 수 있고, 오히려 그럴 ìˆ˜ë°–ì— ì—†ëŠ” ìƒëŒ€ê°€ 불ìŒí•´ 기ë„하는 마ìŒìœ¼ë¡œ 바뀌지요. ì´ë ‡ê²Œ ìƒê°ê³¼ ëŠë‚Œì„ 바꿔 나가면서 ë§ˆìŒ ì•ˆì— ë¯¸ì›€ì´ë‚˜ ì•…í•œ ê°ì •ë“¤ì„ 뽑아 나가야 합니다.
ë˜í•œ 잘한 ì¼ì´ ìžˆì„ ë•Œ ìƒëŒ€ì˜ 공으로 ëŒë¦¬ê³  ìž˜ëª»ëœ ì¼ì´ ìžˆì„ ë•ŒëŠ” ìžì‹ ì˜ 허물로 ëŒë¦´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ë¼ë„ 나보다 ìƒëŒ€ë¥¼ 앞세울 수 있고 ê·¸ì—게 ê³µì ì„ ëŒë¦´ 수 있어야 하며, ìžì‹ ì´ 공로를 ì¸ì •ë°›ì€ 것처럼 함께 기ë»í•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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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역 - 하나님과 ë™í–‰í•œ 믿ìŒì˜ 역사 ì´ìž¬ë¡ ëª©ì‚¬ì˜ ì‚¶ê³¼ 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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