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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시리즈 15 - 엘리야의 선(善)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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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일곱교회] - 버가모 교회를 향한 주님의 교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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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6일 일요일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位)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요한계시록 2:12~14)



버가모 교회는 여러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것에 대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기에 엄한 책망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유혹에 빠져 타협하는 적당주의 신앙과 이단 사상에 물든 교회들을 향해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관한 주님의 편지는 시대를 초월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교회에게 주시는 푯대와 같은 말씀입니다. 신·구약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종합해 교훈하시는 메시지며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핵심 지표라 할 만큼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일곱 교회의 교훈은 과거 교회사 뒤안길에 묻혀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교회를 깨우기 원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사랑의 외침이지요. 많은 교회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교회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합니다.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가진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 말씀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떻게 역사될까요?

세상의 책과는 달리 성경에 있는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그 안에 생명이 있어서 우리가 믿고 행할 때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며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은 날 선 검과 같아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역사를 나타냅니다.

원래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혼 속에 영이 갇혀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잘못 입력된 비진리의 혼을 깨뜨려 나가는 만큼 영이 점점 성장해 온전히 회복됩니다(『영혼육』 참조).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혼을 깨뜨리고 영을 더욱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합니다.

관절이란 뼈와 뼈가 서로 맞닿아 움직일 수 있도록 연결된 부분을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을 의미합니다. 틀은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에 의해 형성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비진리가 입력되어 만들어지지요. 틀에 관해 이해하려면 먼저 자기 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온전히 진리로 변화되기 전에는, 자기 보기에 옳다고 하는 '자기 의'가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비진리를 마치 진리인 것처럼 잘못 알고 입력한 것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가 아니라 '자기 의'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동안 스스로 옳다고 여긴 것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부터 진리에 맞지 않는 '자기 의'를 하나하나 발견하며 버려나가게 되지요.

그런데 '자기 의'를 발견해 버리고자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기 의'가 굳어지면서 '자기 틀'이 됐기 때문입니다. '자기 틀'이란 이렇게 자기가 옳다고 하는 '자기 의'가 나름대로 체계가 잡혀 굳어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성격 자체가 틀이 되기도 하고 자기의 지식, 교양, 취향, 습관, 행동 등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틀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틀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의견이 대립될 때 마찰을 일으킵니다. 또한 자신이 옳다 하는 생각으로 상대를 힘들게 하기도 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판단 정죄하기 쉽습니다.

이런 현상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라온 환경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자기 길을 개척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 하나의 틀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융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외향적인 성격의 틀이 있는 사람은 이를 오해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이기적이다, 교만하다' 하고 쉽게 판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틀은 강하지만 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른 사람의 말이나 권면을 자기 틀로 강하게 막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지요. 그러니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틀을 깨뜨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자기 틀이 너무 강해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조금이나마 스스로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일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틀이 있음을 인정하고 겸비한 자세로 마음 문을 열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틀이 깨뜨려집니다.

골수는 뼈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조직으로 몸에 혈액 세포를 공급합니다. 영적으로는 세미하면서도 깊게 뿌리박힌 죄악을 의미합니다. 뼛속 깊이 있는 골수와 같이 죄악의 뿌리도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까지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죄악은 비교적 쉽게 알지만 본성 속에 깊이 박힌 죄악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평소에는 시기, 교만 등의 악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데 그런 사람도 연단을 받으면 감추어진 악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이 그러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는 온전하게 행했기에 스스로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깊은 본성 속에 분명 악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그를 송사할 때에 그가 악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온몸에 난 악창으로 고통을 받으니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악을 드러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자 그는 자신의 악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 버림으로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지요(욥기강해 『육의 사람 영의 사람』 참조).

관절, 골수와 같이 이미 신체의 일부분처럼 굳어진 자기적인 틀과 악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검으로 찔러 쪼갤 때만이 뽑아 낼 수 있으며, 그럴 때 진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만 선포한다 해서 상대의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근본까지 능히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깊은 영적 말씀이어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에게 말씀의 권세가 따라야 합니다.



2.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소아시아의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버가모는 정치와 학문, 이방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아데나 신전,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비롯해 로마 황제를 숭배하기 위한 3개의 신당이 있었지요.

그중에 특히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뱀을 섬기는 신전이었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환경 가운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대해 '사는 곳을 안다'고 하신 것은 실제로 우상이 가득한 환경에서 사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 말씀을 바탕으로 든든히 서 있지 못함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교묘히 변질시켜 전하면 미혹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사단의 위(位)란 사단이 임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당시 '버가모'라는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던 상황을 말해 줍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찬 사단의 소굴과도 같은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원수 마귀 사단이 온갖 핍박과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3. 안디바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이러한 버가모에서 사도 안디바가 순교했습니다. 그의 순교는 성도들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러한 점을 주님께서는 칭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안디바에 대해 '내 충성된 증인'이라 말씀하신 것을 통해 그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악을 버리고 주님 마음을 열심히 닮아가면서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순교에 이른 것입니다.

안디바의 순교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 관리가 안디바를 잡아 로마 황제의 신상 앞에 세워 놓고 절을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안디바, 황제의 신상에 절하라."

로마 관리의 명령에 안디바는 대답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그분 외에는 내가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겠노라."

안디바의 고백을 들은 로마 관리는 화가 나서 다그칩니다.

"온 세상이 너를 대항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안디바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외칩니다.

"그렇다면 나 안디바는 온 세상을 대항해 예수를 만주의 주로 시인하노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로마 관리는 놋가마를 달구고 그 안에 안디바를 넣어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끔찍한 핍박 속에서도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간혹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왜 하나님을 잘 믿고 충성했는데 핍박을 당하고 순교해야 되는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며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를 깨달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디바가 순교한 버가모 교회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기독교가 들어가 정착하기까지에는 많은 순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과거 세계를 제패한 로마 제국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기독교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조롱하고 멸시하며 즐겼습니다.

자기들이 믿는 종교를 지키기 위해 칼에 목 베이고 사자 밥이 되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심히 어리석어 보였지요. 그런데 차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은 어찌해 죽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

'과연 저들을 저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믿는 예수란 도대체 누구인가?'

이것이 점차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했고, 기독교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결국 복음을 전해 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지요.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공인됐고 얼마 후 로마의 국교로 정해집니다. 바로 여기에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지요. 이로 인해 짧은 시간에 로마를 통해 기독교가 유럽과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던 사람이라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믿음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악을 버리지 않은 만큼 극한 상황이나 죽음의 위협이 올 때 두려움 때문에 변개할 가능성이 큽니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생명 다해 충성하던 사람이라야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악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성령의 충만함과 도우심 가운데 순교에 이를 수 있지요. 순교하면 천국에서 하나님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받으니 이는 오히려 복된 일입니다.



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처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버가모 교회도 주님께 엄한 책망을 들을 만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순교에 이른 안디바와 그를 본받아 믿음을 굳게 지킨 성도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라 말씀하시며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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