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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7ì›” 1ì¼ í™”ìš”ì¼ ì˜¤í›„ 6:41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í•˜ë‚˜ë‹˜ì€ ì‚¬ëž‘ì´ì‹œë¼' 시리즈 8 - í•˜ë‚˜ë‹˜ì˜ ê³µì˜ê°€ ì •ì˜¤ì˜ ë¹›ê°™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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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ë…„ 4ì›” 16ì¼ ì¼ìš”ì¼


"네 ì˜ë¥¼ ë¹›ê°™ì´ ë‚˜íƒ€ë‚´ì‹œë©° 네 ê³µì˜ë¥¼ ì •ì˜¤ì˜ ë¹›ê°™ì´ í•˜ì‹œë¦¬ë¡œë‹¤"(시편 37:6)


ë§Œì¼ í•˜ë‚˜ë‹˜ì˜ ì‚¬ëž‘ì„ ëª¨ë¥´ê³  ê·¸ ë§ˆìŒ ì•ˆì— í•˜ë‚˜ë‹˜ì˜ ì‚¬ëž‘ì´ ì—†ìœ¼ë©´ ì§„ì • ì‚¬ëž‘ì„ ì•„ëŠ” 사람ì´ë¼ê³  ë§í•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ì‚¬ëž‘ì˜ ê·¼ë³¸ì´ ë˜ì‹œê¸° 때문입니다.
사랑 ìžì²´ê°€ ë˜ì‹œê³  ë…ìƒìž ì˜ˆìˆ˜ë‹˜ì„ í™”ëª©ì œë¬¼ë¡œ 주시기까지 우리 ì¸ìƒë“¤ì„ 사랑하시며, 오래 ì°¸ìœ¼ì‹œë˜ ì¼í” ë²ˆì— ì¼ê³± 번까지ë¼ë„ 참으시고 ìš°ë¦¬ì˜ í—ˆë‹¤í•œ í—ˆë¬¼ì„ ë®ì–´ 주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사ë§ì—서 구ì›í•˜ê³ ìž ì‹­ìžê°€ì—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해 주시며 ìœ¨ë²•ì„ ì™„ì„±í•˜ì‹  ì‚¬ëž‘ì˜ ì£¼ë‹˜ì„ ì•Œì•„ì•¼ 비로소 ì‚¬ëž‘ì— ëŒ€í•´ 안다고 ë§í•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ìš°ë¦¬ì— ëŒ€í•œ ì‚¬ëž‘ì„ ì–´ë–»ê²Œ 나타내 주고 계실까요?


1. ê³µì˜ ê°€ìš´ë° ì—­ì‚¬í•˜ì‹œëŠ” 하나님

í•˜ë‚˜ë‹˜ì˜ ì†ì„±ì€ 사랑과 ê³µì˜ë¼ê³  ë§í•  수 있습니다. ê³µì˜ëŠ” ì„ ì•… ê°„ì— ê³µí‰í•˜ê²Œ ìƒë²Œì„ 행하시는 í•˜ë‚˜ë‹˜ì˜ ì„±í’ˆ ë˜ëŠ” ì†ì„±ì„ ì¼ì»«ëŠ” ë§ì´ì§€ìš”. ì„ ì•…ì„ êµ¬ë¶„í•˜ëŠ” ê¸°ì¤€ì´ ë˜ëŠ” ê²ƒì´ ìœ¨ë²•, ê³§ 성경 66ê¶Œ 하나님 ë§ì”€ìž…니다.
ë”°ë¼ì„œ 하나님 사랑만 알고 ê³µì˜ë¥¼ 알지 못한다면 ê·¸ ì‚¬ëž‘ì´ ì˜¨ì „í•œ ì‚¬ëž‘ì´ ë  ìˆ˜ 없습니다. ë˜í•œ ê³µì˜ë§Œ 알고 ì‚¬ëž‘ì„ ì•Œì§€ 못하면 í•˜ë‚˜ë‹˜ì„ ë‘렵고 무서운 분으로만 ì¸ì‹í•˜ê²Œ ë˜ì§€ìš”. 그래서 í•˜ë‚˜ë‹˜ì˜ ê³µì˜ì™€ ì‚¬ëž‘ì´ ì¡°í™”ë¥¼ ì´ë£° 때 ì°¸ì‚¬ëž‘ì´ ë‚˜ì˜¤ëŠ”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 ë§Œë¬¼ì„ ì§€ìœ¼ì‹œê³  주관하시며 ì˜ê³„를 í¬í•¨í•œ 모든 ê²ƒì˜ ì£¼ì¸ìœ¼ë¡œì„œ 유ì¼í•œ ì‹¬íŒ ì£¼ê°€ ë˜ì‹œì§€ë§Œ, ìžì‹ ë„ ì˜ê³„ì˜ ë²•ì¹™ì— ë”°ë¼ ì—­ì‚¬í•´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 ì‚¬ëžŒì´ ì´ ë•…ì— ì‚´ì•„ê°€ëŠ” ë™ì•ˆì— 필요한 ë‚´ìš©ë“¤ì„ ì„±ê²½ì— ê¸°ë¡í•´ 놓으셨는ë°, í•˜ë‚˜ë‹˜ê»˜ì„œë„ ì´ ë§ì”€ì— ë”°ë¼ ì •í™•í•˜ê²Œ 역사하고 계시지요. ì´ê²ƒì´ 사람들ì—게는 í•˜ë‚˜ë‹˜ì˜ ê³µì˜ë¡œ 나타나는 것입니다.
ê³µì˜ì˜ 기본 ì›ì¹™ì„ 간단히 ë§í•˜ë©´ ì‹¬ì€ ëŒ€ë¡œ ê±°ë‘게 하시고 행한 대로 ê°šì•„ 주시는 것ì´ë¼ í•  수 있습니다.
ê°ˆë¼ë””아서 6장 7ì ˆì— "스스로 ì†ì´ì§€ ë§ë¼ í•˜ë‚˜ë‹˜ì€ ë§Œí™€ížˆ ì—¬ê¹€ì„ ë°›ì§€ 아니하시나니 ì‚¬ëžŒì´ ë¬´ì—‡ìœ¼ë¡œ 심든지 그대로 ê±°ë‘리ë¼" ë§ì”€í•œ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ì‚¬ëžŒì´ ë¬´ì—‡ìœ¼ë¡œ 심든지 그대로 ê±°ë‘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ì‹¬ì€ ëŒ€ë¡œ ê±°ë‘게 하신다는 ê²ƒì€ ë¬¼ì§ˆì ì¸ ê²ƒë¿ ì•„ë‹ˆë¼ ë§ˆìŒì— í’ˆì€ ìƒê°ê³¼ ë§, í–‰ë™ í•˜ë‚˜ê¹Œì§€ë„ í¬í•¨ë˜ë¯€ë¡œ 어떠한 것ì´ë“  악한 것으로 심으면 악으로 ê±°ë‘ê³ , 선한 것으로 심으면 선으로 ê±°ë‘게 ëœë‹¤ëŠ” ì›ì¹™ìž…니다.
ë§ˆíƒœë³µìŒ 16장 27ì ˆì—ë„ "ì¸ìžê°€ ì•„ë²„ì§€ì˜ ì˜ê´‘으로 ê·¸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ê·¸ ë•Œì— ê° ì‚¬ëžŒì˜ í–‰í•œ 대로 갚으리ë¼" 했고, 로마서 2장 6ì ˆì—ë„ "하나님께서 ê° ì‚¬ëžŒì—게 ê·¸ 행한 대로 ë³´ì‘하시ë˜" 했습니다.
ì´ì²˜ëŸ¼ 하나님께서는 ì„±ê²½ì— ê¸°ë¡í•œ ê³µì˜ì˜ ì›ì¹™ì— ë”°ë¼ í–‰í•˜ì‹œëŠ” 분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6장 23ì ˆì— 'ì£„ì˜ ì‚¯ì€ ì‚¬ë§'ì´ë¼ê³  했으니 죄를 심으면 사ë§ìœ¼ë¡œ ê±°ë‘게 하십니다. ë”°ë¼ì„œ 마지막 백보좌 ëŒ€ì‹¬íŒ ë•Œ 죄ì¸ì—게는 ì˜ì›í•œ í˜•ë²Œì„ ë‚´ë¦¬ì‹¤ ìˆ˜ë°–ì— ì—†ëŠ” 것입니다.
ìž ì–¸ 8장 17ì ˆì— "나를 사랑하는 ìžë“¤ì´ ë‚˜ì˜ ì‚¬ëž‘ì„ ìž…ìœ¼ë©°"ë¼ê³  했는ë°, ì´ ë˜í•œ í•˜ë‚˜ë‹˜ì˜ ê³µì˜ê°€ 담긴 ë§ì”€ìž…니다. 즉 ì–¼ë§ˆí¼ í•˜ë‚˜ë‹˜ì„ ê°€ê¹Œì´í•˜ê³  사랑하ëŠëƒì— ë”°ë¼ ìš°ë¦¬ë„ í•˜ë‚˜ë‹˜ì˜ ì‚¬ëž‘ì„ ìž…ì„ ìˆ˜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ì¸ìœ¼ë¡œì„œ í•˜ë‚˜ë‹˜ì˜ ì‚¬ëž‘ì„ ì•Œê¸°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ì§€ê¸ˆë„ ì‚¬ëž‘í•˜ê³  계십니다. 하지만 ì‹¬ì€ ëŒ€ë¡œ ê±°ë‘ê³  행한 대로 받는다는 ê²ƒì´ ê³µì˜ì˜ 법칙ì´ê¸° ë•Œë¬¸ì— ìš°ë¦¬ê°€ í•˜ë‚˜ë‹˜ì„ ì‚¬ëž‘í•˜ëŠ” ë§Œí¼ í•˜ë‚˜ë‹˜ì˜ ì‚¬ëž‘ì„ ë°›ì„ ìˆ˜ 있습니다.
ì´ì²˜ëŸ¼ í•˜ë‚˜ë‹˜ì˜ ê³µì˜ëŠ” 편벽ë¨ì´ ì—†ì´ ê³µí‰í•  ë¿ ì•„ë‹ˆë¼ ì •í™•í•©ë‹ˆë‹¤. ìž ì–¸ 16장 2ì ˆì— "ì‚¬ëžŒì˜ í–‰ìœ„ê°€ ìžê¸° 보기ì—는 ëª¨ë‘ ê¹¨ë—í•˜ì—¬ë„ ì—¬í˜¸ì™€ëŠ” ì‹¬ë ¹ì„ ê°ì°°í•˜ì‹œëŠë‹ˆë¼" ë§ì”€í•œ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ì¸ìƒì˜ ë§ê³¼ í–‰ë™ì€ 물론 모든 ìƒê°ê³¼ 마ìŒì— 품는 ê²ƒê¹Œì§€ë„ ì •í™•í•˜ê²Œ 심íŒí•˜ì‹œëŠ” 것입니다. ë”°ë¼ì„œ í•˜ë‚˜ë‹˜ì˜ ê³µì˜ëŠ” 예외가 없으며 ì´ ë•…ì—서든 아니면 ì‹¬íŒ ë‚ ì— ê°€ì„œë“  반드시 드러나게 ëœë‹¤ëŠ” ì‚¬ì‹¤ì„ ê¸°ì–µí•˜ì‹œê¸°ë¥¼ ë°”ëžë‹ˆë‹¤.


2. ê³µì˜ ì†ì— 나타난 í•˜ë‚˜ë‹˜ì˜ ì‚¬ëž‘

í•˜ë‚˜ë‹˜ì˜ ê³µì˜ì— 대해, 마치 하나님께서 율법ì´ë¼ëŠ” í‹€ì„ ë§Œë“¤ì–´ 놓으시고 여기ì—서 벗어나는 사람마다 ë²Œì„ ì£¼ì‹œëŠ” 것처럼 ìƒê°í•˜ëŠ” ì‚¬ëžŒë“¤ì€ ê³µì˜ì˜ í•˜ë‚˜ë‹˜ì„ ë¬´ì„œìš´ 하나님으로 오해할 ìˆ˜ë„ ìžˆìŠµë‹ˆë‹¤. 그러나 ì´ëŠ” ê³µì˜ë¥¼ 행하시는 í•˜ë‚˜ë‹˜ì˜ ë§ˆìŒì„ 알지 못하기 때문ì´ë©°, ìžì‹ ì´ ì–´ë‘  ê°€ìš´ë° ìžˆê¸° 때문입니다. ê³µì˜ë¥¼ 행하시는 í•˜ë‚˜ë‹˜ì˜ ë§ˆìŒì„ ëŠë¼ê¸°ë³´ë‹¤ëŠ” ê³µì˜ì— 따른 징계가 ë‘렵기 ë•Œë¬¸ì— í•˜ë‚˜ë‹˜ì˜ ê³µì˜ê°€ 무섭게만 ëŠê»´ì§€ëŠ” 것ì´ì§€ìš”.
ì‹¬ì€ ëŒ€ë¡œ ê±°ë‘게 하시고 행한 대로 ê°šì•„ 주시는 í•˜ë‚˜ë‹˜ì˜ ê³µì˜ëŠ” ë²Œì„ ì£¼ì‹œê¸° ìœ„í•¨ì´ ì•„ë‹ˆë¼ ì˜¤ížˆë ¤ ìƒì„ 주시기 ìœ„í•¨ìž„ì„ ì•Œì•„ì•¼ 합니다. ì•…ì„ í–‰í•œ ì‚¬ëžŒì€ ì•…ì„ í–‰í•œ ë§Œí¼ ë°˜ë“œì‹œ ê·¸ì— ëŒ€í•œ ë³´ì‘ì´ ì£¼ì–´ì§€ì§€ë§Œ, 반대로 ì„ ì„ í–‰í•˜ëŠ” 사람ì—게는 ì„ ì„ í–‰í•œ ë§Œí¼ ë°˜ë“œì‹œ ì„ ê³¼ 축복으로 ëŒì•„오는 ê²ƒì´ í•˜ë‚˜ë‹˜ì˜ ê³µì˜ìž…니다.
ë”°ë¼ì„œ 하나님 ë§ì”€ ì•ˆì— ì‚¬ëŠ” 사람ì—게는 í•˜ë‚˜ë‹˜ì˜ ê³µì˜ê°€ 무서운 ê²ƒì´ ì•„ë‹ˆë¼ ì˜¤ížˆë ¤ ì¶•ë³µì´ë©° ë³´ìž¥ì´ ë˜ëŠ”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ê³µì˜ì˜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ê°šì•„ 주시는 ì¶•ë³µì„ ì²´í—˜í•˜ë©° 살아가는 것ì´ì§€ìš”.
ì´ì²˜ëŸ¼ í•˜ë‚˜ë‹˜ì˜ ê³µì˜ì—는 하나님 뜻대로 살기 ì›í•˜ê³  진리를 ì¢‡ê³ ìž í•˜ëŠ” í•˜ë‚˜ë‹˜ì˜ ìžë…€ë“¤ì—게 ì¶•ë³µì„ ì£¼ì‹œë©° 하늘나ë¼ì—서 ì˜ì›í•œ ìƒê¸‰ìœ¼ë¡œ ê°šì•„ 주시기 위한 í•˜ë‚˜ë‹˜ì˜ ë§ˆìŒì´ 담겨 있습니다. ì´ë¥¼ 깨닫는 ì‚¬ëžŒì€ í•˜ë‚˜ë‹˜ì˜ ê³µì˜ ì†ì—서 ì‚¬ëž‘ì˜ í•˜ë‚˜ë‹˜ì„ ëŠë‚„ 수 있지요. ê³µì˜ ê°€ìš´ë° ë°›ëŠ” 징계나 ì—°ë‹¨ë„ ê²°êµ­ì€ ë‚˜ë¥¼ 온전케 ë§Œë“¤ê³ ìž ê°„ì„­í•˜ì‹œëŠ” í•˜ë‚˜ë‹˜ì˜ ì„¬ì„¸í•œ ì‚¬ëž‘ìž„ì„ ê¹¨ë‹¬ì•„ ì–´ë‘ ì—서 떠나 빛으로 나오게 ë˜ëŠ”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ìžë…€ë¥¼ 사랑하기 ë•Œë¬¸ì— ì§•ê³„í•˜ì‹œëŠ” 것ì´ë©° ì´ê²ƒì´ ê³§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ì¦ê±°ìž…니다(ìž  3:12). ë§Œì¼ ì£„ì—서 ëŒì´í‚¤ì§€ 않으면 사ë§ì˜ 길로 ê°ˆ ìˆ˜ë°–ì— ì—†ìœ¼ë‹ˆ 징계를 통해서ë¼ë„ 깨닫고 ëŒì´í‚¤ê²Œ 하여 구ì›ê³¼ ì¶•ë³µì˜ ê¸¸ë¡œ ì´ë„시는 것입니다(히 12:8).


3. í•˜ë‚˜ë‹˜ì˜ ì‚¬ëž‘ê³¼ ê³µì˜ë¥¼ 통해 온전한 모습으로 나온 다윗

통ì¼ì™•êµ­ì„ ì´ë£¬ ì´ìФë¼ì—˜ì˜ 위대한 왕 ë‹¤ìœ—ì€ ì–´ë ¤ì„œë¶€í„° í•˜ë‚˜ë‹˜ì„ ì‚¬ëž‘í•˜ê³  í° ë¯¿ìŒìœ¼ë¡œ í•˜ë‚˜ë‹˜ì„ ê¸°ì˜ì‹œê²Œ í•´ 드렸습니다. 그러나 ì•„ì§ ë²„ë¦¬ì§€ 못한 ì£„ì„±ì´ ìžˆì–´ 밧세바ë¼ëŠ” ì—¬ì¸ì„ 취하고 ì´ ì¼ì„ 무마시키기 위해 ê·¸ ë‚¨íŽ¸ì¸ ìš°ë¦¬ì•„ë¥¼ ì êµ°ì˜ ì†ì— 죽게 만듭니다.
ì´ ì¼ë¡œ ì¸í•´ ë‹¤ìœ—ì€ í–‰í•œ 대로 ê°šì•„ 주시는 í•˜ë‚˜ë‹˜ì˜ ê³µì˜ì— ë”°ë¼ ì§•ê³„ì™€ 함께 혹ë…한 ì—°ë‹¨ì„ ë°›ìŠµë‹ˆë‹¤. ë°§ì„¸ë°”ì™€ì˜ ì‚¬ì´ì—서 난 ì•„ë“¤ì´ ì£½ì—ˆì„ ë¿ ì•„ë‹ˆë¼ ì…‹ì§¸ 아들 ì••ì‚´ë¡¬ì´ ë°˜ëž€ì„ ì¼ìœ¼ì¼œ ì•„ë²„ì§€ì¸ ë‹¤ìœ—ê¹Œì§€ 죽ì´ë ¤ 한 것ì´ì§€ìš”. ì´ì— ë‹¤ìœ—ì€ ì••ì‚´ë¡¬ì„ í”¼í•´ ì„±ì„ ë²„ë¦¬ê³  ë„ë§ê°€ì•¼ 하는 비참한 신세가 ë˜ì—ˆìŠµë‹ˆë‹¤. 피난길ì—서 시므ì´ë¼ëŠ” 백성으로부터 경멸ì ì¸ 저주를 듣지만, 그를 죽ì¼ë§Œí•œ 권세와 íž˜ì´ ìžˆì—ˆìŒì—ë„ ê·¸ë¥¼ 죽ì´ì§€ 않고 오히려 부하가 죽ì´ë ¤ê³  하는 것까지 막았습니다.
ì´ì²˜ëŸ¼ ë‹¤ìœ—ì€ ëª¨ë“  ì¼ì„ 하나님께서 ìžì‹ ì—게 í—ˆë½í•˜ì‹  ì—°ë‹¨ìž„ì„ ê¹¨ë‹«ê³  겸허하게 ë°›ì•„ë“¤ì¸ ê²ƒìž…ë‹ˆë‹¤. 하나님께서는 í‰ì†Œ í•˜ë‚˜ë‹˜ì„ ì‚¬ëž‘í•˜ê³  하나님으로부터 심히 í° ì‚¬ëž‘ê³¼ ì¶•ë³µì„ ë°›ì•˜ë˜ ë‹¤ìœ—ì´ì—ˆê¸°ì— ë”ë”ìš± 분명한 ê³µì˜ë¡œ 역사하셨습니다. ì´ ì¼ì„ 계기로 남아 있는 죄성까지ë¼ë„ 완전히 뽑아내기를 ì›í•˜ì…¨ì§€ìš”.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ë‹¤ìœ—ì´ ì£„ë¥¼ 범하기 ì „ì— ë¯¸ë¦¬ 경고하심으로 ê¹¨ìš°ì¹¨ì„ ì£¼ê³  막아 주실 ìˆ˜ë„ ìžˆì—ˆì§€ë§Œ, êµ³ì´ ì™¸ë©´í•˜ì‹¬ìœ¼ë¡œ ê·¸ ì•…ì„ ë“œëŸ¬ë‚´ì‹œê³  ì—°ë‹¨ì„ í—ˆë½í•˜ì‹  것입니다.
ê·¸ ê²°ê³¼ ë‹¤ìœ—ì€ í•˜ë‚˜ë‹˜ ì•žì— ì˜¨ì „í•˜ê³  합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ì´ì „보다 ë”ìš± í° ì¶•ë³µì„ ë„˜ì¹˜ê²Œ 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ë‹¤ìœ—ì„ ì €ì£¼í•˜ê³  ìš•í–ˆë˜ ì•…í•œ 시므ì´ë‚˜ 아버지를 반역해 죽ì´ê³ ìž í–ˆë˜ ì••ì‚´ë¡¬ì€ ê²°êµ­ 죽ìŒìœ¼ë¡œ ë나는 ê²ƒì„ ë³¼ 수 있습니다.
ë”°ë¼ì„œ í•˜ë‚˜ë‹˜ì˜ ê³µì˜ëŠ” 진리 ì•ˆì— ì‚´ê³ ìž í•˜ë©° 설령 ì „ì—는 죄 ê°€ìš´ë° ìžˆì—ˆë‹¤ê³  í•´ë„ ì´ì œ 회개하고 ëŒì´í‚¨ 사람ì—게는 ì–‘ì•½ì´ ë˜ê³  축복으로 임하지만, 반대로 죄 ê°€ìš´ë° ê±°í•˜ê³  ë까지 ëŒì´í‚¤ì§€ 않는 사람ì—게는 엄한 심íŒì´ 임할 ìˆ˜ë°–ì— ì—†ë‹¤ëŠ” ì‚¬ì‹¤ì„ ê¹¨ìš°ì³ì•¼ 합니다.
ì´ëŸ¬í•œ í•˜ë‚˜ë‹˜ì˜ ì‚¬ëž‘ê³¼ ê³µì˜ ê¹Œë‹­ì— ìš°ë¦¬ëŠ” 어떠한 ìƒí™©ì—ì„œë„ ëª¨ë“  ê²ƒì„ í•˜ë‚˜ë‹˜ê»˜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ì „ 12:14 ; ê°ˆ 6:9). 반드시 ê³µì˜ ê°€ìš´ë° ì—­ì‚¬í•˜ì‹œëŠ” í•˜ë‚˜ë‹˜ì„ ë¯¿ê³  ê·¸ ë§ì”€ì„ 믿으면 누가 ë³´ë“ , ë³´ì§€ 않든 ì˜¤ì§ í•˜ë‚˜ë‹˜ë§Œ ë°”ë¼ë³´ê³  ì„ ê³¼ 진리대로 행해 나갈 수 있지요.
설령 애매하게 í•박당한다 í•´ë„, 억울한 ëˆ„ëª…ì„ ì“´ë‹¤ í•´ë„, ë˜ ë‹¹ìž¥ì—는 ì§„ì‹¤ì´ ê°€ë ¤ì§€ëŠ” 것처럼 ë³´ì—¬ë„ ì ˆëŒ€ ë‚™ë§ì¹˜ 않고 하나님께 모든 ê²ƒì„ ë§¡ê¸¸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반드시 í•˜ë‚˜ë‹˜ì˜ ê³µì˜ë¥¼ ì •ì˜¤ì˜ ë¹›ê°™ì´ ë‚˜íƒ€ë‚´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4. ê³µì˜ë¥¼ ì •ì˜¤ì˜ ë¹›ì— ë¹„ìœ í•˜ì‹  ì´ìœ 

ì •ì˜¤ì˜ ë¹›ì€ í•˜ë£¨ ì¤‘ì— ê°€ìž¥ ë°ížˆ 비추는 빛입니다. ê¹Šì€ ì‚° ì†ì— 있다고 í•´ë„, ë†’ì€ ë¹Œë”© 숲 사ì´ì— 있다고 í•´ë„ ì¤‘ì²œì— ë–  있는 태양ì—서 발하는 ì •ì˜¤ì˜ ë¹›ì„ ë³¼ 수 있습니다. ì´ì²˜ëŸ¼ í•˜ë‚˜ë‹˜ì˜ ê³µì˜ëŠ” 너무나 ë°ížˆ 빛나므로 ë¬´ì—‡ìœ¼ë¡œë„ ê°€ë¦´ 수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게 ë©ë‹ˆë‹¤. ì´ëŸ¬í•œ ê³µì˜ê°€ 있으므로 하나님 사랑과 ë³´ìž¥ì„ ë°›ëŠ” ì‚¬ëžŒë“¤ì— ëŒ€í•œ í•˜ë‚˜ë‹˜ì˜ ì‚¬ëž‘í•˜ëŠ” ì¦ê±°ê°€ 나타나게 ë˜ì§€ìš”.
ë°˜ë©´ì— í•˜ë‚˜ë‹˜ì˜ ì‚¬ëž‘ë°›ëŠ” ì‚¬ëžŒì„ ë¹„ë°©í•˜ê³  íŒë‹¨í•˜ë©° ì•…ì„ í–‰í•˜ëŠ” ì‚¬ëžŒì— ëŒ€í•´ì„œëŠ” 하나님께서 반드시 ê³µì˜ë¡œ 심íŒí•˜ì…”서 ì˜³ì€ ê²ƒì„ ë“œëŸ¬ë‚´ì‹œëŠ” ê²ƒì„ ë³¼ 수 있습니다.
ì‚¬ëž‘ì˜ í•˜ë‚˜ë‹˜ê»˜ì„œëŠ” 선민 ì´ìФë¼ì—˜ ë°±ì„±ì„ ìœ„í•´ ì¶œì• êµ½ì˜ ì§€ë„ìž ëª¨ì„¸ë¥¼ íƒí•˜ì‹œê³  40ë…„ê°„ì˜ ì—°ë‹¨ì„ í†µí•´ í•˜ë‚˜ë‹˜ì˜ ì“°ì‹œê¸°ì— í•©ë‹¹í•œ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장정만 í•´ë„ 60ë§Œ ëª…ì´ ë„˜ëŠ” ë°±ì„±ë“¤ì„ ì´ëŒê³  출애굽 한 후 ì –ê³¼ ê¿€ì´ í르는 가나안 땅으로 ì¸ë„하기 위해서는 í•˜ë‚˜ë‹˜ì˜ ë§ˆìŒì„ ë‹®ì€ ì§€ë„ìžê°€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광야 ìƒí™œí•˜ëŠ” ë™ì•ˆì— ìˆ˜ë§Žì€ ë¶ˆìˆœì¢…ê³¼ ì›ë§, 불í‰í•˜ë©° 때로는 대ì í•´ ì˜¤ê¸°ë„ í•˜ëŠ” ë°±ì„±ë“¤ì„ ì˜¤ëž˜ 참고 ê¸íœ¼ê³¼ ìžë¹„와 ìš©ì„œì˜ ë§ˆìŒìœ¼ë¡œ ì¸ë„í•´ 가기 위해서는 í° ì‚¬ëž‘ê³¼ 온유한 마ìŒì„ 가진 ì‚¬ëžŒì´ ìžˆì–´ì•¼ 했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í° ì‚¬ëž‘ê³¼ 온유한 마ìŒ, ë•으로 온 ë°±ì„±ì„ ê°ì‹¸ ê·¸ë“¤ì„ ì¶œì• êµ½ 시켜 가나안 땅으로 ì¸ë„í•  수 있었고, í›„ê³„ìž ì—¬í˜¸ìˆ˜ì•„ê°€ 등장할 수 있었으며, 출애굽 2ì„¸ë“¤ì´ ì¶•ë³µì˜ ë•… ê°€ë‚˜ì•ˆì— ë“¤ì–´ê°ˆ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불í‰í•˜ê³  ì›ë§í•œ ì‚¬ëžŒë“¤ì— ëŒ€í•´ì„œëŠ” 절대 용서치 않으셨지요. 출애굽 한 사람 ì¤‘ì— í•˜ë‚˜ë‹˜ ë§ì”€ì„ 믿고 ìˆœì¢…í–ˆë˜ ì—¬í˜¸ìˆ˜ì•„ì™€ ê°ˆë ™ì„ ì œì™¸í•œ 20세 ì´ìƒì˜ 모든 ì‚¬ëžŒì´ ê´‘ì•¼ì—서 엎드러질 ê²ƒì„ ë§ì”€í•˜ì…¨ìŠµë‹ˆë‹¤. ë¿ë§Œ ì•„ë‹ˆë¼ ë°±ì„± ì¤‘ì— ê³ ë¼ë¥¼ 비롯해 한 무리가 ë°˜ì—­ì„ ì¼ìœ¼í‚¤ê³  모세와 ì•„ë¡ ì—게 대ì í–ˆì„ 때, ë•…ì´ ê·¸ ìž…ì„ ì—´ì–´ 삼키는 무서운 재앙으로 ê·¸ë“¤ì„ ë©¸í•˜ì…¨ì§€ìš”. ì´ë•Œë„ 모세와 ì•„ë¡ ì€ í•˜ë‚˜ë‹˜ì˜ ê¸íœ¼ì„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ê²°ì½” ê³µì˜ì˜ 심íŒì„ ê±°ë‘ì§€ 않으셨습니다.
ì´ì²˜ëŸ¼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ê²ƒì€ ê²°ì½” ì‚¬ëž‘ì´ ì—†ì–´ì„œê°€ 아닙니다. 아무 잘못 없는 모세를 대ì í•˜ê³  ì›ë§í•¨ìœ¼ë¡œ ê³µì˜ë¥¼ 굽게 하려고 한 사람들ì—게 í•˜ë‚˜ë‹˜ì˜ ê³µì˜ë¥¼ ì •ì˜¤ì˜ ë¹›ê°™ì´ ë‚˜íƒ€ë‚´ì‹œê¸° 위함ì´ìš”, 백성들ì—게 êµí›ˆì„ 삼게 하시고 다시금 모세를 대ì í•˜ê³  ì›ë§í•˜ëŠ” ì‚¬ëžŒì´ ë‚˜ì˜¤ì§€ 않ë„ë¡ ì—­ì‚¬í•˜ì‹  것입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ê³µì˜ ê°€ìš´ë° ì—­ì‚¬í•˜ì‹œëŠ” í•˜ë‚˜ë‹˜ì˜ ì‚¬ëž‘ì„ ë§ˆìŒ ê¹Šì´ ê¹¨ë‹«ê³  모든 ê²ƒì„ í•˜ë‚˜ë‹˜ê»˜ 맡김으로 í•˜ë‚˜ë‹˜ì˜ ì‚¬ëž‘ê³¼ ë³´ìž¥ì„ ë°›ì•„ ê³µì˜ë¥¼ ì •ì˜¤ì˜ ë¹›ê°™ì´ ë‚˜íƒ€ë‚´ë©° 하나님께 ì˜ê´‘ë§Œ ëŒë¦¬ì‹œê¸°ë¥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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