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¹Î´º½º, ¸¸¹Î, ¸¸¹Î±³È¸, ¸¸¹Î´º½º, ÀÌÀç·Ï, Àç·Ï, ´ÚÅ͸®
2025ë…„ 7ì›” 1ì¼ í™”ìš”ì¼ ì˜¤í›„ 7:20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ì„ ' 시리즈 15 - ì—˜ë¦¬ì•¼ì˜ ì„ (å–„)_2


2341
2022ë…„ 8ì›” 14ì¼ ì¼ìš”ì¼


"저가 ë˜ ì—˜ë¦¬ì•¼ì˜ ì‹¬ë ¹ê³¼ 능력으로 주 ì•žì— ì•žì„œê°€ì„œ ì•„ë¹„ì˜ ë§ˆìŒì„ ìžì‹ì—게,
거스리는 ìžë¥¼ ì˜ì¸ì˜ ìŠ¬ê¸°ì— ëŒì•„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ë°±ì„±ì„ ì˜ˆë¹„í•˜ë¦¬ë¼"(ëˆ„ê°€ë³µìŒ 1:17)


엘리야는 본래부터 심히 겸비한 마ìŒì„ 가졌고, ìžê¸° ì˜ê°€ 없어서 ëˆ„êµ¬ì™€ë„ ë¶€ë”ªì¹˜ì§€ 않았습니다. 육ì ìœ¼ë¡œ ë³¼ 때는 매우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ì¤‘ì‹¬ì„ ë³´ì‹œëŠ” 하나님께서는 ê·¸ì˜ ì„ í•œ 마ìŒì„ ì•„ì…¨ê¸°ì— ê·¸ë¥¼ íƒí•´ êµ¬ì•½ì‹œëŒ€ì˜ í° ì„ ì§€ìžë¡œ 세우셨습니다.
ì—°ë‹¨ì„ í†µí•´ 강하고 담대해진 엘리야는 여호와 í•˜ë‚˜ë‹˜ì˜ ì´ë¦„으로 놀ë¼ìš´ ì´ì ê³¼ 기사를 나타냄으로 ìš°ìƒìˆ­ë°°ì— ë¹ ì§„ ì´ìФë¼ì—˜ ë°±ì„±ì´ í•˜ë‚˜ë‹˜ê»˜ë¡œ ëŒì•„오게 합니다. ì´ì²˜ëŸ¼ 엘리야 ì„ ì§€ìžê°€ ì‚¬ëª…ì„ ì˜¨ì „ížˆ ê°ë‹¹í–ˆì„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ê·¸ì˜ í›„ê³„ìžë¡œ 삼으시고 엘리야는 요단강ì—서 ì‚° 채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왕하 2:11).
과연 íšŒë¦¬ë°”ëžŒì„ íƒ€ê³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ë˜ì—ˆì„까요? 성경 곳곳ì—는 엘리야가 ì‹ ì•½ì‹œëŒ€ì— ì„¸ë¡€ 요한으로 ì™”ìŒì„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ì—˜ë¦¬ì•¼ì˜ ì‹¬ë ¹ê³¼ 능력으로 ì£¼ì˜ ê¸¸ì„ ì˜ˆë¹„í•œ 세례 ìš”í•œì´ ì²œêµ­ì—서 í° ìžë¼ ì¸ì •ë°›ì€ ì„ ì€ ë¬´ì—‡ì¼ê¹Œìš”?


1. 행함과 진실함으로 í•˜ë‚˜ë‹˜ì„ ì§€ê·¹ížˆ 사랑하는 마ìŒ

엘리야는 ì´ ë•…ì—서 ì‚¬ì—­ì„ ì´ë£° 때 늘 하나님과 êµí†µí–ˆìŠµë‹ˆë‹¤. ê¹Šì€ ê¸°ë„를 통해 하나님께서 ì›í•˜ì‹œëŠ” ëœ»ì„ ë°ížˆ 깨닫기 위해 노력했지요. 유약한 성품으로 í•˜ë‚˜ë‹˜ì˜ í°ì¼ì„ ì´ë£¨ê¸° 위해 ê·¸ë§Œí¼ í•˜ë‚˜ë‹˜ê»˜ 매달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ëŠ¥ë ¥ì„ ì£¼ì‹¬ìœ¼ë¡œ ì—˜ë¦¬ì•¼ì˜ ì‹¬ë ¹ì„ ê°•í•˜ê²Œ 붙들어 주셨지요.
ì´ëŸ¬í•œ ì²´í—˜ì„ í†µí•´ 엘리야는 í•˜ë‚˜ë‹˜ì˜ ê¶ŒëŠ¥ì„ ë”ìš± 사모하게 ë˜ì—ˆê³ , 약한 ìžì‹ ì—게 í° ê¶ŒëŠ¥ì„ ìž…í˜€ 강하게 하시는 í•˜ë‚˜ë‹˜ì„ ë”ìš± 사랑하게 ë˜ì—ˆìŠµë‹ˆë‹¤. 그래서 ìžì‹ ì€ ë„저히 순종할 수 없는 ì¼ì´ë¼ í•´ë„ í•˜ë‚˜ë‹˜ê»˜ì„œ 명하시면 순종함으로 ì´ë¤„ 드렸습니다.
ëŒ€ë¶€ë¶„ì˜ ì‚¬ëžŒì€ ì‚¬ëž‘í•˜ëŠ” ì‚¬ëžŒì„ ìœ„í•´ì„œëŠ” 무엇ì´ë“ ì§€ 다 해주고 ì‹¶ì–´ 합니다. ìžì‹ ì˜ 한계를 벗어나는 ì¼ë„ ìµœì„ ì„ ë‹¤í•˜ì§€ìš”. ê·¸ëŸ°ë° ìœ¡ì ì¸ ì‚¬ëž‘ì€ ì„¸ì›”ì´ ì§€ë‚˜ê³  í™˜ê²½ì´ ë°”ë€Œë©´ 마ìŒê³¼ í–‰í•¨ì´ ë³€í•©ë‹ˆë‹¤. ìžì‹ ì´ í•´ 준 ë§Œí¼ ìƒëŒ€ì—ê²Œë„ ë°›ê¸°ë¥¼ ì›í•˜ì§€ìš”. 그러나 엘리야는 í•˜ë‚˜ë‹˜ì— ëŒ€í•œ ì‚¬ëž‘ì´ ì ˆëŒ€ 변하지 않았고, ê·¸ ì‚¬ëž‘ì„ í–‰í•¨ê³¼ 진실함으로 온전히 나타냈다는 사실입니다.
ë§Žì€ ì‚¬ëžŒì´ ì£¼ë‹˜ì„ ë¯¿ê³  í•˜ë‚˜ë‹˜ì„ ì‚¬ëž‘í•œë‹¤ê³  하지만, 하나님 ì¼ì„ ì´ë£° 때 어려운 ì¼ ì•žì—서는 ìžì‹ ì˜ 성품 ë•Œë¬¸ì— í•˜ì§€ 못한다고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있지요. ì´ëŸ° ì‚¬ëžŒì€ ì¤‘ì‹¬ì—서 ì£¼ë‹˜ì„ ë¯¿ê³  진실하게 í•˜ë‚˜ë‹˜ì„ ì‚¬ëž‘í•˜ëŠ”ì§€ ëŒì•„보아야 합니다.
"믿는 ìžì—게는 능치 못할 ì¼ì´ ì—†ëŠë‹ˆë¼" ë§ì”€ëŒ€ë¡œ(막 9:23) í•˜ë‚˜ë‹˜ì„ í–¥í•œ ì‚¬ëž‘ì´ ëœ¨ê±°ìš°ë©´ ì‚¬ëžŒì˜ ì„±í’ˆì€ ìƒê´€ì´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ë„를 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ì‹¬ì •ì´ ë˜ê¸° 때문입니다.
ì—´ì™•ê¸°ìƒ 18장 19ì ˆì— "그런즉 ë³´ë‚´ì–´ 온 ì´ìФë¼ì—˜ê³¼ ì´ì„¸ë²¨ì˜ ìƒì—서 먹는 ë°”ì•Œì˜ ì„ ì§€ìž ì‚¬ë°± 오십ì¸ê³¼ 아세ë¼ì˜ ì„ ì§€ìž ì‚¬ë°±ì¸ì„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했습니다. 심히 유약한 성품ì´ì—ˆë˜ 엘리야가 바알 ì„ ì§€ìž 450ì¸ê³¼ ì•„ì„¸ë¼ ì„ ì§€ìž 400ì¸ì—게 ë¶ˆì˜ ì‘ë‹µì„ ëŒì–´ë‚´ë¦¬ëŠ” ëŒ€ê²°ì„ ì œì•ˆí•œ 것ì´ì§€ìš”. í•˜ë‚˜ë‹˜ì„ í–¥í•œ 불붙는 듯한 ì‚¬ëž‘ì´ ìžˆìœ¼ë‹ˆ í•˜ë‚˜ë‹˜ì„ ë©€ë¦¬í•˜ê³  ìš°ìƒìˆ­ë°°ì— ë¹ ì§„ ë°±ì„±ì„ ì–´ì°Œí•˜ë“  êµ¬í•˜ê³ ìž í•˜ëŠ” 마ìŒì´ 간절해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ë˜í•œ 엘리야는 ì´ëŸ¬í•œ ê³¼ì •ì„ í†µí•´ í•˜ë‚˜ë‹˜ì— ëŒ€í•´ ë” ë°ížˆ 깨닫고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장성한 믿ìŒì˜ ë¶„ëŸ‰ì¸ ì•„ë¹„ì˜ ë¯¿ìŒì— ì´ë¥´ë©´ 태초부터 계신 아버지 í•˜ë‚˜ë‹˜ì— ëŒ€í•´ ë” ê¹Šì´ ì•Œê²Œ ë˜ì§€ìš”. 그래서 ì´ ë•…ì— ìžˆì„ ë•Œ í•˜ë‚˜ë‹˜ì— ëŒ€í•´ ê¹Šì´ ê¹¨ìš°ì¹¨ìœ¼ë¡œ 무척 사모했는ë°, 마침내 ì‚° 채로 들림 받아 ì²œêµ­ì— ì˜¬ë¼ê°€ í•˜ë‚˜ë‹˜ì„ ì¹œížˆ ëµˆì—ˆì„ ë•Œ 얼마나 í•˜ë‚˜ë‹˜ì— ëŒ€í•œ 사랑으로 ê°€ë“했겠습니까?
삼위ì¼ì²´ í•˜ë‚˜ë‹˜ì— ëŒ€í•´ ë” ë°ížˆ 깨닫고 ì •ë¦½í–ˆì„ ë¿ ì•„ë‹ˆë¼ ì„±ìž, 성령 í•˜ë‚˜ë‹˜ì˜ ì‚¬ëª…ì— ëŒ€í•´ì„œë„ ì•Œê²Œ ë˜ì—ˆì§€ìš”. 특히 ì„±ìž í•˜ë‚˜ë‹˜ê»˜ì„œ 구세주가 ë˜ì‹œê¸° 위해 낮고 천한 ìœ¡ì˜ ëª¸ì„ ìž…ê³  ì´ ë•…ì— ì˜¤ì…”ì„œ 화목제물로서 ì‹­ìžê°€ì— 달려 죽으셔야 í•¨ì„ ì•Œê²Œ ë˜ì—ˆì„ 때는 주를 향한 ì‚¬ëª¨í•¨ì´ ë¶ˆë¶™ëŠ” 것 같아 아버지 하나님께 "주를 위해 무엇ì´ë“  í•  수 있나ì´ë‹¤."ë¼ê³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ì´ ê³ ë°±ì„ ë°›ìœ¼ì‹œê³  엘리야ì—게 ì£¼ì˜ ê¸¸ì„ ì˜ˆë¹„í•˜ëŠ” í° ì‚¬ëª…ì„ ì£¼ì…¨ì§€ìš”. 바로 ì‚° 채로 들림 받아 하나님 ê³ì— ìžˆë˜ ì—˜ë¦¬ì•¼ë¥¼ 다시 ì´ ë•…ìœ¼ë¡œ 보내셔서 주를 향한 불붙는 마ìŒìœ¼ë¡œ ì‚¬ëª…ì„ ê°ë‹¹ì¼€ 하신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ì£¼ì˜ ê¸¸ì„ ì˜ˆë¹„í•œ ì„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다시 ì´ ë•…ì— ë³´ë‚´ì‹¤ 것과 그가 ì–´ë–¤ ì‚¬ëª…ì„ ê°ë‹¹í•  것까지 ì„±ê²½ì— ì˜ˆì–¸í•´ 놓으셨습니다. ì´ì‚¬ì•¼ 40장 3ì ˆì— "외치는 ìžì˜ 소리여 ê°€ë¡œë˜ ë„ˆí¬ëŠ” 광야ì—서 ì—¬í˜¸ì™€ì˜ ê¸¸ì„ ì˜ˆë¹„í•˜ë¼ ì‚¬ë§‰ì—서 우리 í•˜ë‚˜ë‹˜ì˜ ëŒ€ë¡œë¥¼ í‰íƒ„ì¼€ 하ë¼" 했습니다.
ë§ë¼ê¸° 4장 5~6ì ˆì—는 "ë³´ë¼ ì—¬í˜¸ì™€ì˜ í¬ê³  ë‘려운 ë‚ ì´ ì´ë¥´ê¸° ì „ì— ë‚´ê°€ ì„ ì§€ 엘리야를 너í¬ì—게 보내리니 그가 ì•„ë¹„ì˜ ë§ˆìŒì„ ìžë…€ì—게로 ëŒì´í‚¤ê²Œ 하고 ìžë…€ë“¤ì˜ 마ìŒì„ ê·¸ë“¤ì˜ ì•„ë¹„ì—게로 ëŒì´í‚¤ê²Œ 하리ë¼â€¦" 했지요. ì´ê²ƒì€ 불êµì—서 ë§í•˜ëŠ” ìœ¤íšŒì˜ ê°œë…과는 전혀 다릅니다. í•˜ëŠ˜ì— ì˜¬ë¼ê°„ ì‚¬ëžŒì´ ë‹¤ì‹œ 태어난 ì¼ì€ ì¸ë¥˜ ì—­ì‚¬ìƒ ë‹¨ 한 번 ì˜¤ì§ ì—˜ë¦¬ì•¼ 한 사람ë¿ì´ì—ˆìŠµë‹ˆë‹¤.
그러면 íšŒë¦¬ë°”ëžŒì„ íƒ€ê³  ì‚° 채로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다시 ì´ ë•…ì— íƒœì–´ë‚  수 있었ì„까요?
ì‚¬ëžŒì´ ìž‰íƒœëœ ì§€ 6개월째가 ë˜ë©´ 하나님께서 ì˜ì„ ë³´ë‚´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ì£¼ì˜ ê¸¸ì„ ì˜ˆë¹„í•  ì‚¬ëžŒì´ ìž‰íƒœë  ë•Œ ê·¸ì—게 ë³´ë‚´ 주시는 ì˜ ì•ˆì— ì—˜ë¦¬ì•¼ì˜ ë§ˆìŒì„ ë‹´ì•„ 주셨지요. 바로 ì—˜ë¦¬ì•¼ì˜ ì˜ ìžì²´ê°€ 온 ê²ƒì´ ì•„ë‹ˆë¼ 'ì—˜ë¦¬ì•¼ì˜ ë§ˆìŒì´ 담긴 ì˜'ì„ ë³´ë‚´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ë™ì •ë…€ ë§ˆë¦¬ì•„ì˜ ëª¸ì„ ë¹Œë ¤ 성령으로 잉태ë˜ì…¨ê¸°ì— ìœ¡ì˜ ë¶€ëª¨ì˜ ê¸°ë¥¼ 전혀 받지 않으셨으며, 잉태ë¨ê³¼ ë™ì‹œì— 주어진 ì˜ ìžì²´ê°€ 바로 ì˜ˆìˆ˜ë‹˜ì˜ ë§ˆìŒì´ì—ˆìŠµë‹ˆë‹¤. ê·¸ëŸ°ë° ì—˜ë¦¬ì•¼ì˜ ê²½ìš°ëŠ” 예수님과 달리 ìœ¡ì˜ ë¶€ëª¨ì˜ ê¸°ì— ì˜í–¥ì„ 받기 ë•Œë¬¸ì— í•˜ë‚˜ë‹˜ê»˜ì„œëŠ” ê·¸ 당시 가장 선하다 í•  수 있는 ì‚¬ëžŒì´ ìž‰íƒœí•œ 태아ì—게 ì—˜ë¦¬ì•¼ì˜ ë§ˆìŒì´ 담긴 ì˜ì„ ë³´ë‚´ 주셨지요(눅 1:5~38).
ì´ë ‡ê²Œ 태어난 ì‚¬ëžŒì´ ë°”ë¡œ 세례 요한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ì„±ê²½ì— ë§Žì€ ì„ ì§€ìžì™€ 사ë„들, ì œìžë“¤ì´ 있지만 ìœ ë… ì„¸ë¡€ ìš”í•œì— ëŒ€í•´ "하나님께로서 ë³´ë‚´ì‹¬ì„ ë°›ì€ ì‚¬ëžŒì´ ë‚¬ìœ¼ë‹ˆ ì´ë¦„ì€ ìš”í•œì´ë¼"(ìš” 1:6) 했습니다.
ëˆ„ê°€ë³µìŒ 1장 17ì ˆì—는 "저가 ë˜ ì—˜ë¦¬ì•¼ì˜ ì‹¬ë ¹ê³¼ 능력으로 주 ì•žì— ì•žì„œê°€ì„œ … 주를 위하여 세운 ë°±ì„±ì„ ì˜ˆë¹„í•˜ë¦¬ë¼" 했습니다. ì´ëŠ” 세례 ìš”í•œì´ ìž‰íƒœë˜ê¸° ì „, 천사장 ê°€ë¸Œë¦¬ì—˜ì´ ê·¸ì˜ ì•„ë¹„ê°€ ë  ì œì‚¬ìž¥ 사가랴ì—게 나타나 장차 태어날 ì•„ê¸°ì— ëŒ€í•´ ì¼ëŸ¬ì¤€ 내용입니다.
ëˆ„ê°€ë³µìŒ 3장 4~6ì ˆì—는 ì´ì‚¬ì•¼ ì„ ì§€ìžê°€ 예언한 사람, ê³§ ì£¼ì˜ ê¸¸ì„ ì˜ˆë¹„í•˜ê³  ê·¸ì˜ ì²©ê²½ì„ í‰íƒ„ì¼€ 하는 광야ì—서 외치는 ìžê°€ 세례 ìš”í•œìž„ì„ í™•ì¸í•´ 주고 있지요.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례 ìš”í•œì´ ë°”ë¡œ ì—˜ë¦¬ì•¼ìž„ì„ ë§ì”€í•˜ì…¨ìŠµë‹ˆë‹¤. ì œìž ë² ë“œë¡œì™€ 야고보, ìš”í•œì´ ë³€í™”ì‚°ì—서 홀연히 변화ë˜ì‹  ì˜ˆìˆ˜ë‹˜ì„ ëª©ê²©í•˜ê³  구세주로 오신 ë¶„ìž„ì„ ì•Œê²Œ ë˜ìž 예수님께 "그러면 어찌하여 ì„œê¸°ê´€ë“¤ì´ ì—˜ë¦¬ì•¼ê°€ 먼저 와야 í•˜ë¦¬ë¼ í•˜ë‚˜ì´ê¹Œ?" 하고 여쭙니다.
ê·¸ëŸ¬ìž ì˜ˆìˆ˜ë‹˜ê»˜ì„œ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ì¼ì„ íšŒë³µí•˜ë¦¬ë¼ ë‚´ê°€ 너í¬ì—게 ë§í•˜ë…¸ë‹ˆ 엘리야가 ì´ë¯¸ ì™”ìœ¼ë˜ ì‚¬ëžŒë“¤ì´ ì•Œì§€ 못하고 ìž„ì˜ë¡œ 대우하였ë„다 ì¸ìžë„ ì´ì™€ ê°™ì´ ê·¸ë“¤ì—게 ê³ ë‚œì„ ë°›ìœ¼ë¦¬ë¼" 하고 답변하시지요(마 17:10~12). ì´ì–´ì§€ëŠ” 13ì ˆì—는 "그제야 ì œìžë“¤ì´ ì˜ˆìˆ˜ì˜ ë§ì”€ 하신 ê²ƒì´ ì„¸ë¡€ ìš”í•œì¸ ì¤„ì„ ê¹¨ë‹¬ìœ¼ë‹ˆë¼" 기ë¡í•˜ê³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í•˜ë‚˜ë‹˜ì˜ ë³¸ì²´ë¡œì„œ 아무 í ë„ ì ë„ 없으신 ì°¸ ë¹›ì´ì‹­ë‹ˆë‹¤.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êµ¬ì•½ì‹œëŒ€ì— ì‚° 채로 들림 ë°›ì€ ì—˜ë¦¬ì•¼ë¥¼ 다시 ì´ ë•…ì— ë³´ë‚´ì–´ 메시아가 오기 ì „ì— ì£¼ì˜ ê¸¸ì„ ì˜ˆë¹„ì¼€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ì´ ë•…ì—서 ì‚´ì•„ 보았고, ì²œêµ­ì˜ ì˜ê´‘ ë˜í•œ 누리고 ìžˆì—ˆê¸°ì— ë‹¤ì‹œ ì´ ë•…ì— ë‚´ë ¤ì˜¤ëŠ” ê²ƒì´ ë¬´ì—‡ì„ ì˜ë¯¸í•˜ëŠ”ì§€ ë„ˆë¬´ë„ ìž˜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ì‚¬ëž‘ì˜ ì£¼ë‹˜ê»˜ì„œ 장차 겪으실 ì¼ì„ ìƒê°í•˜ë©´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 ì´ ë•…ì— ë‹¤ì‹œ 내려오는 ê²ƒì´ ì¡°ê¸ˆë„ êº¼ë ¤ì§€ì§€ 않았고 오히려 기ì¨ê³¼ ê°ì‚¬í•¨ìœ¼ë¡œ 순종할 수 있었지요. ì´ì²˜ëŸ¼ 엘리야가 ë§ë¡œë§Œì´ ì•„ë‹ˆë¼ í–‰í•¨ê³¼ 진실함으로 ì‚¬ëž‘ì„ ì˜¨ì „ížˆ 나타내는 ê²ƒì„ í•˜ë‚˜ë‹˜ê»˜ì„œëŠ” 지극한 선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오늘날 ë§Žì€ ì‚¬ëžŒì´ ì²˜ìŒ ì£¼ë‹˜ì„ ë§Œë‚˜ ì²«ì‚¬ëž‘ì´ ëœ¨ê±°ìš¸ 때는 ê·¸ ì‚¬ëž‘ì´ ë„ˆë¬´ë„ í¬ê³  ê°ì‚¬í•˜ì—¬ "ì£¼ë‹˜ì„ ìœ„í•´ 무엇ì´ë“ ì§€ 하겠습니다. 하나님 ë§ì”€ëŒ€ë¡œ 살겠습니다. ë‚´ ìƒëª…, ë‚˜ì˜ ì „ë¶€ëŠ” ì£¼ë‹˜ì„ ìœ„í•´ 드리길 ì›í•©ë‹ˆë‹¤."ë¼ê³  고백합니다. ê·¸ëŸ°ë° ì´ ê³ ë°±ëŒ€ë¡œ 행함으로 진실하게 ë³´ì´ëŠ” ì‚¬ëžŒì€ ê·¸ë¦¬ ë§Žì§€ 않습니다. ì˜¤ì§€ì— ê°€ì„œ ìƒëª…ì˜ ìœ„í˜‘ì„ ë¬´ë¦…ì“°ê³  ë³µìŒì„ 전하ë¼ëŠ” ê²ƒë„ ì•„ë‹Œë°, ìžì‹ ì´ 있는 ìžë¦¬ì—서 ë³µìŒì„ 전하는 ê²ƒë„ ëª» 하지요. ë˜í•œ 전부를 달ë¼ê³  í•˜ì‹¬ë„ ì•„ë‹ˆìš”, ì¶•ë³µ 주시기 위해 온전한 ì‹­ì¼ì¡°ë¥¼ ë‚´ë¼ í•˜ì‹œëŠ”ë° ê·¸ ë§ì”€ì¡°ì°¨ 순종하지 못합니다.
ì§„ì • í•˜ë‚˜ë‹˜ì„ ì‚¬ëž‘í•˜ëŠ” ì‚¬ëžŒì€ í•˜ë‚˜ë‹˜ ë§ì”€ì„ 지켜 í–‰í•¨ì€ ë¬¼ë¡ ì´ìš”, 하나님 나ë¼ë¥¼ ì´ë£¸ì—ë„ ì–´ë µê³  힘든 ì¼ì— 스스로 앞장섭니다. í•˜ë‚˜ë‹˜ì„ í–¥í•œ 뜨거운 ì‚¬ëž‘ì´ ê°€ë“í•´ 모든 ë§ê³¼ 행함ì—서 ê·¸ ì‚¬ëž‘ì´ ë°°ì–´ 나올 ìˆ˜ë°–ì— ì—†ì§€ìš”. 하나님께서 기ë»í•˜ì‹œëŠ” ì¼ì´ë¼ë©´ 무엇ì´ë“ ì§€ í•  수 있습니다. 그러니 ì–´ëŠ ëˆ„ê°€ 하나님 ì¼ì„ ì´ë£¸ì— 있어서 ìžì‹ ì˜ 성품ì´ë‚˜ í™˜ê²½ì„ í•‘ê³„ 대겠습니까? ì˜¤ì§ í•˜ë‚˜ë‹˜ì˜ ëœ»ë§Œ ìƒê°í•˜ê²Œ ë˜ê³  어찌하든 ê·¸ ëœ»ì„ ì´ë¤„ ë“œë¦¬ê³ ìž ê°„ì ˆížˆ 소ë§í•˜ëŠ” 것입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í•˜ë‚˜ë‹˜ì„ í–¥í•œ ì—˜ë¦¬ì•¼ì˜ ì‚¬ëž‘ê³¼ í–‰í•¨ì„ í†µí•´ 진실한 사랑 앞ì—서는 ìžì‹ ì˜ 성품ì´ë‚˜ í™˜ê²½ì„ í•‘ê³„ 댈 수 ì—†ìŒì„ 깨우ì³ì•¼ 하겠습니다. ë”구나 ì˜¤ëŠ˜ë‚ ì€ ì—˜ë¦¬ì•¼ 시대와 달리 성령 시대ì´ë¯€ë¡œ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ë§ˆìŒ ì•ˆì— ê³„ì‹œë©° ìš°ë¦¬ì˜ ì—°ì•½í•¨ì„ ë„우시고 ì¸ë„í•´ 주십니다
그러므로 ì—˜ë¦¬ì•¼ì˜ ì§€ê·¹ížˆ í•˜ë‚˜ë‹˜ì„ ì‚¬ëž‘í•˜ëŠ” ì„ ì„ ë³¸ë°›ì•„ 행함과 진실함으로 í•˜ë‚˜ë‹˜ì„ ë”ìš± 뜨ê²ê²Œ 사랑하며 ì£¼ì˜ ì¼ì— 힘쓰시기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Àå ¸¹ÀÌ º» ±â»ç
   

 
Ãßõ °Ë»ö¾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