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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7ì›” 2ì¼ ìˆ˜ìš”ì¼ ì˜¤ì „ 2:07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ì‹­ìžê°€ì˜ ë„' 시리즈 9 - êµ¬ìœ ì— ëˆ„ì´ì‹  예수님


4228
2021ë…„ 5ì›” 9ì¼ ì¼ìš”ì¼


"오늘날 ë‹¤ìœ—ì˜ ë™ë„¤ì— 너í¬ë¥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ê³§ ê·¸ë¦¬ìŠ¤ë„ ì£¼ì‹œë‹ˆë¼
너í¬ê°€ 가서 ê°•ë³´ì— ì‹¸ì—¬ êµ¬ìœ ì— ëˆ„ì¸ ì•„ê¸°ë¥¼ 보리니
ì´ê²ƒì´ 너í¬ì—게 표ì ì´ë‹ˆë¼ 하ë”니"
(ëˆ„ê°€ë³µìŒ 2:11~12)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신 ë¶„ì´ë‹ˆ ë…ìƒìž ì˜ˆìˆ˜ë‹˜ì„ ì–¼ë§ˆë“ ì§€ 호화로운 장소ì—서 존귀하게 태어나ë„ë¡ í•˜ì‹¤ 수 있습니다. 그럼ì—ë„ ì˜ˆìˆ˜ë‹˜ì„ ì´ˆë¼í•œ ì§ìŠ¹ì˜ ìš°ë¦¬ì—서 태어나 êµ¬ìœ ì— ëˆ„ì´ê²Œ 하신 ë°ì—는 ê¹Šì€ ì˜ì ì¸ ì˜ë¯¸ê°€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육ì ìœ¼ë¡œëŠ” ì´ˆë¼í•œ 우리ì—서 태어나셨으나 ì˜ì ìœ¼ë¡œëŠ” 지극히 ì˜í™”롭게 태어나셨ìŒì„ 알아야 합니다(눅 2:14). 하나님께서는 ìˆ˜ë§Žì€ ì²œêµ° 천사가 함께하게 하시고 ì˜ê´‘ì˜ ë¹›ìœ¼ë¡œ ë‘ë¥´ì…¨ì„ ë¿ ì•„ë‹ˆë¼ ì´ ë•…ì˜ ì„ í•œ 목ìžë“¤ê³¼ ë™ë°© 박사 등 예비한 ì‚¬ëžŒë“¤ì´ ê²½ë°°í•˜ë„ë¡ í•˜ì…¨ì§€ìš”. 예수님께서 ì´ ë•…ì— ì˜¤ì‹¬ìœ¼ë¡œ 구ì›ì˜ ê¸¸ì´ ì—´ë¦¬ê³  무수한 ì˜í˜¼ì´ ì²œêµ­ì— ë“¤ì–´ì˜¤ë©° ë§Œì™•ì˜ ì™•, ë§Œì£¼ì˜ ì£¼ê°€ ë˜ì‹¤ 것ì´ê¸°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ìœ¡ì‹ ì„ ìž…ê³  ì´ ë•…ì— ì˜¤ì…”ì„œ ì´ˆë¼í•˜ê²Œ êµ¬ìœ ì— ëˆ„ì´ì‹œê³  ê°€ë‚œì„ ê²ªìœ¼ì…”ì•¼ë§Œ í–ˆë˜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1. ì§ìŠ¹ì˜ ìš°ë¦¬ì—서 태어나 êµ¬ìœ ì— ëˆ„ì´ì‹  ì´ìœ 

ëˆ„ê°€ë³µìŒ 2장 1~7ì ˆì—는 ì„±ë ¹ì˜ ëŠ¥ë ¥ìœ¼ë¡œ ì˜ˆìˆ˜ë‹˜ì„ ìž‰íƒœí•œ ë™ì •ë…€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호ì ì„ 하러 갔다가 ì˜ˆìˆ˜ë‹˜ì„ ë‚³ì€ ìž¥ë©´ì´ ë‚˜ì˜µë‹ˆë‹¤.
당시 로마 황제 ê°€ì´ì‚¬ 아구스ë„는 ì¸êµ¬ 조사를 위해 í˜¸ì  ë§Œë“¤ ê²ƒì„ ëª…í–ˆìŠµë‹ˆë‹¤. 로마 통치 아래 ìžˆë˜ ëª¨ë“  ìœ ëŒ€ì¸ ì—­ì‹œ ìžì‹ ì˜ ê³ í–¥, í˜¹ì€ ë³¸ì ì§€ë¡œ 가서 호ì ì„ 만들어야 했지요. ë‹¤ìœ—ì˜ ìžì† ìš”ì…‰ë„ í˜¸ì ì„ 만들기 위해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는ë°, 마리아는 ì´ë¯¸ 성령으로 ì˜ˆìˆ˜ë‹˜ì„ ìž‰íƒœí•œ ìƒíƒœë¡œ í•´ì‚°í•  ë‚ ì´ ë‹¤í•˜ì˜€ìŠµë‹ˆë‹¤. ê·¸ëŸ°ë° ìˆ˜ë§Žì€ ì‚¬ëžŒì´ ì´ë™í•¨ìœ¼ë¡œ ì¸í•´ 여관ì—는 ë¬µì„ ê³³ì´ ì—†ì—ˆì§€ìš”.
마리아는 ê²°êµ­ ì§ìŠ¹ì˜ ìš°ë¦¬ì—서 해산하게 ë˜ì—ˆê³ , 마땅히 뉠 만한 ê³³ì´ ì—†ì–´ 아기를 ê°•ë³´ì— ì‹¸ì„œ ì§ìŠ¹ì˜ ë¨¹ì´ë¥¼ ë‹´ì•„ë‘는 êµ¬ìœ ì— ë‰˜ì—ˆìŠµë‹ˆë‹¤. ì´ ë•…ì— ì˜¨ ì¸ë¥˜ì˜ 구세주로서 오신 예수님께서 왜 ì´ì²˜ëŸ¼ 낮고 천한 ê³³ì—서 태어나신 것ì¼ê¹Œìš”?
ì „ë„서 3장 18ì ˆì— "ë‚´ê°€ ì‹¬ì¤‘ì— ì´ë¥´ê¸°ë¥¼ ì¸ìƒì˜ ì¼ì— 대하여 í•˜ë‚˜ë‹˜ì´ ì €í¬ë¥¼ 시험하시리니 ì €í¬ë¡œ ìžê¸°ê°€ ì§ìŠ¹ë³´ë‹¤ ë‹¤ë¦„ì´ ì—†ëŠ” ì¤„ì„ ê¹¨ë‹«ê²Œ 하려 하심ì´ë¼ 하였노ë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ì‚¬ëžŒì„ ì‹œí—˜í•´ 보시니 ì§ìŠ¹ê³¼ ë‹¤ë¦„ì´ ì—†ë”ë¼ëŠ” 것입니다. ì‚¬ëžŒì„ ì§ìŠ¹ì— ë¹„ìœ í•˜ë‹ˆ ì´ìƒížˆ 여길 수 있지만 ê·¸ ì•…í•¨ì„ ë³´ë©´ ì§ìŠ¹ë³´ë‹¤ 못한 ê²½ìš°ë„ ë§ŽìŠµë‹ˆë‹¤. ë§Œë¬¼ì˜ ì˜ìž¥ì´ë¼ 불리는 ì‚¬ëžŒì´ ìžê¸° ìš•ì‹¬ì„ ì±„ìš°ê³ ìž ì „ìŸì„ ì¼ìœ¼ì¼œ ìˆ˜ë§Žì€ ì‚¬ëžŒì„ ì£½ì´ëŠ”ê°€ 하면, ë¬¼ì§ˆì˜ ìš•ì‹¬ ë•Œë¬¸ì— ê°€ì¡±ë¼ë¦¬ 싸우고 고소하며 심지어는 죽ì´ê¸°ê¹Œì§€ 합니다.
ì›ëž˜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거룩하신 í•˜ë‚˜ë‹˜ì˜ í˜•ìƒì„ ë”°ë¼ ì‚¬ëžŒì„ ì§€ìœ¼ì…¨ìŠµë‹ˆë‹¤. ê·¸ëŸ°ë° ë²”ì£„í•œ 아담으로 ì¸í•´ ì‚¬ëžŒì˜ ì£¼ì¸ì¸ ì˜ì´ 죽으니 í•˜ë‚˜ë‹˜ì˜ ì„ í•˜ì‹  형ìƒì„ 잃어버리고 ì§ìŠ¹ê³¼ 다를 ë°” 없는 존재가 ëœ ê²ƒìž…ë‹ˆë‹¤. 차츰 마ìŒì´ 죄악으로 물들어가 ì„¸ìƒ ì •ìš•ê³¼ ìžê¸° ìš•ì‹¬ì— ë”°ë¼ ì˜¨ê°– 죄를 지으며 살아가게 ë˜ì—ˆì§€ìš”. ì´ëŸ¬í•œ ì‚¬ëžŒì€ í˜¼ê³¼ 육으로만 ì§€ì€ ì§ìŠ¹ì²˜ëŸ¼ ê²°ì½” 하늘나ë¼ì— ê°ˆ 수 없고, í•˜ë‚˜ë‹˜ì„ ì•„ë°” ì•„ë²„ì§€ë¼ ë¶€ë¥¼ ìˆ˜ë„ ì—†ìŠµë‹ˆë‹¤. 그러니 우리가 거룩한 ì²œêµ­ì— ë“¤ì–´ê°€ë ¤ë©´ 반드시 ì‚¬ëžŒì˜ ë³¸ë¶„ì„ ë˜ì°¾ì•„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ì‚¬ëžŒì´ ì–´ë–»ê²Œ 해야 ì§ìŠ¹ê³¼ 다를 ë°” 없는 ì‚¶ì—서 벗어나 ì‚¬ëžŒì˜ ë³¸ë¶„ì„ ë˜ì°¾ì„ 수 있ì„까요? ì „ë„서 12장 13ì ˆì— "ì¼ì˜ ê²°êµ­ì„ ë‹¤ 들었으니 í•˜ë‚˜ë‹˜ì„ ê²½ì™¸í•˜ê³  ê·¸ ëª…ë ¹ì„ ì§€í‚¬ì§€ì–´ë‹¤ ì´ê²ƒì´ ì‚¬ëžŒì˜ ë³¸ë¶„ì´ë‹ˆë¼" 했습니다. í•˜ë‚˜ë‹˜ì„ ê²½ì™¸í•œë‹¤ëŠ” ê²ƒì€ ì•…ì„ ëª¨ì–‘ì´ë¼ë„ 버려 나가는 것ì´ê³ (ìž  8:13) ì„±ê²½ì— '하ë¼, 하지 ë§ë¼, 지키ë¼, 버리ë¼' ë§ì”€í•œ 대로 순종하는 ê²ƒì´ ê³§ 하나님 ëª…ë ¹ì„ ì§€í‚¤ëŠ” 것ì´ë©° ì‚¬ëžŒì˜ ë³¸ë¶„ì„ ë˜ì°¾ëŠ” 길입니다.
ì‚¬ëž‘ì˜ í•˜ë‚˜ë‹˜ê»˜ì„œ ì´ëŸ° ëª…ë ¹ì„ í•˜ì‹  ê²ƒì€ ê²°ì½”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ê²ƒì´ ì•„ë‹™ë‹ˆë‹¤. 부모가 ìžë…€ë¥¼ 사랑하여 "공부해ë¼" 당부하며 ì‚¬ëžŒì˜ ë„리를 ê°€ë¥´ì¹˜ë“¯ì´ í•˜ë‚˜ë‹˜ê»˜ì„œë„ ê·¸ì˜ ìžë…€ë“¤ì´ ì‚¬ëžŒì˜ ë³¸ë¶„ì„ ë‹¤í•´ ì¶•ë³µëœ ì‚¶ì„ ì˜ìœ„하ë„ë¡ ì•Œë ¤ 주시는 것ì´ì§€ìš”. 모든 ì‚¬ëžŒì´ êµ¬ì›ì— ì´ë¥´ê¸°ë¥¼ ì›í•˜ì‹œëŠ” 하나님께서 ì˜ì›í•œ 천국으로 ì¸ë„하시기 위한 섬세한 ì‚¬ëž‘ì˜ í‘œí˜„ìž…ë‹ˆë‹¤.
ì´ì²˜ëŸ¼ 예수님께서는 ì§ìŠ¹ë³´ë‹¤ 못한 ì‚¬ëžŒë“¤ì˜ ì£„ë¥¼ 대ì†í•˜ê³  ì°¸ëœ ì˜ì˜ ì–‘ì‹ì´ ë˜ì–´ 주시기 위해 ì§ìŠ¹ì˜ ìš°ë¦¬ì—서 태어나 êµ¬ìœ ì— ëˆ„ì´ì‹  것입니다.


2. 부요하신 ìžë¡œì„œ 가난한 ê¸¸ì„ ê°€ì‹  ì´ìœ 

ìš”í•œë³µìŒ 3장 35ì ˆì— '아버지께서 ì•„ë“¤ì„ ì‚¬ëž‘í•˜ì‚¬ ë§Œë¬¼ì„ ë‹¤ ê·¸ ì†ì— 주셨다' 했고, 골로새서 1장 16ì ˆì—는 'ë§Œë¬¼ì´ ë‹¤ 그로 ë§ë¯¸ì•”ê³  그를 위하여 창조ë˜ì—ˆë‹¤' 했습니다. ì´ì²˜ëŸ¼ 창조주 í•˜ë‚˜ë‹˜ì˜ ë…ìƒìžì´ì‹œë©° 천지 ë§Œë¬¼ì˜ ì£¼ì¸ì´ì‹  예수님께서 êµ³ì´ ê°€ë‚œí•œ ê¸¸ì„ ê°€ì‹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고린ë„후서 8장 9ì ˆì— "우리 주 예수 그리스ë„ì˜ ì€í˜œë¥¼ 너í¬ê°€ 알거니와 부요하신 ìžë¡œì„œ 너í¬ë¥¼ 위하여 가난하게 ë˜ì‹¬ì€ ê·¸ì˜ ê°€ë‚œí•¨ì„ ì¸í•˜ì—¬ 너í¬ë¡œ 부요케 하려 하심ì´ë‹ˆë¼" ë§ì”€í•œ 대로 우리ì—게 ë¶€ìš”ì˜ ì¶•ë³µì„ ì£¼ì‹œê¸° 위함입니다.
ì›ëž˜ 하나님께서 ì‚¬ëžŒì„ ì°½ì¡°í•˜ì…¨ì„ ë•Œì—는 ë•€ í˜ë¦¬ì§€ 않고 ì¼í•˜ì§€ ì•Šì•„ë„ í•­ìƒ í’요롭게 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ì•„ë‹´ì´ í•˜ë‚˜ë‹˜ ë§ì”€ì— 불순종해 타ë½í•œ 뒤로는 사람과 함께 ë§Œë¬¼ë„ ì €ì£¼ë°›ì•„ ë•€ í˜ë ¤ 경작해야 ì‹ë¬¼ì„ ì–»ì„ ìˆ˜ 있게 ë˜ì—ˆì§€ìš”(ì°½ 3:17~19). 모든 ì‚¬ëžŒì´ ê°€ë‚œì„ ê²ªëŠ” ê²ƒì€ ì²« 사람 ì•„ë‹´ì˜ ë²”ì£„ë¡œ ì¸í•œ 저주ì´ê¸°ì— 예수님께서 친히 ê°€ë‚œì„ ê²ªìœ¼ì‹¬ìœ¼ë¡œ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하신 것입니다.
ì–´ë–¤ ì´ëŠ” ì˜ˆìˆ˜ë‹˜ì˜ ê°€ë‚œì´ ì˜ì  ê°€ë‚œì„ ì˜ë¯¸í•œë‹¤ê³ ë„ 하는ë°,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ìž‰íƒœë¼ ë‚˜ì‹  ë¶„ì´ë©°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ì´ë¯€ë¡œ ì˜ì ìœ¼ë¡œ 가난하다는 ë§ì€ 옳지 않습니다. ë˜í•œ 하나님께 ë¬¼ì§ˆì„ êµ¬í•˜ëŠ” ê²ƒì´ ìž˜ëª»ëœ ì‹ ì•™ì´ë¼ê³  ë§í•˜ê³ , 마치 예수 그리스ë„를 믿으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ì¸ì‹í•˜ê¸°ë„ í•˜ëŠ”ë° ì´ëŠ” ê²°ì½” í•˜ë‚˜ë‹˜ì˜ ëœ»ì´ ì•„ë‹™ë‹ˆë‹¤.
성경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요케 하신다는 ìˆ˜ë§Žì€ ì¶•ë³µì˜ ë§ì”€ì´ 있습니다. ë˜ ë¯¿ìŒì˜ ì¡°ìƒ ì•„ë¸Œë¼í•¨ì„ 비롯해 ì´ì‚­, 야곱, 요셉, 다니엘 등 í•˜ë‚˜ë‹˜ì„ ê²½ì™¸í•˜ë©° ê·¸ ë§ì”€ì— ìˆœì¢…í–ˆë˜ ì‚¬ëžŒë“¤ì€ í’성하고 부요한 ì‚¶ì„ ëˆ„ë ¸ë˜ ê²ƒì„ ë³¼ 수 있지요. ìš°ë¦¬ë„ ê°€ë‚œì„ ëŒ€ì†í•˜ì‹  ì£¼ë‹˜ì˜ ì€í˜œ ì†ì—서 ë¶€ìš”í•¨ì˜ ì¶•ë³µì„ ë°›ì„ ìˆ˜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ê³µì˜ ê°€ìš´ë° í–‰í•˜ì‹œë©°, ì‹¬ì€ ëŒ€ë¡œ ê±°ë‘게 하십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ìžë…€ì—게 ì¢‹ì€ ê²ƒì„ ì£¼ê¸° ì›í•˜ëŠ” 것처럼 ì‚¬ëž‘ì´ ë§Žìœ¼ì‹  아버지 í•˜ë‚˜ë‹˜ê»˜ì„œë„ ê·¸ì˜ ìžë…€ê°€ 믿고 구하는 것마다 ì‘답하기를 ì›í•˜ì‹œì§€ìš”(막 11:24). 그러나 아무리 ì›í•´ë„ 구하지 않으면 ì‘ë‹µë°›ì„ ìˆ˜ 없으며 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ì‘ë‹µì„ ì£¼ì‹œëŠ” ê²ƒë„ ì•„ë‹™ë‹ˆë‹¤. 심지 않고 ê±°ë‘려는 ê²ƒì€ í•˜ë‚˜ë‹˜ì„ ê°€ë³ê³  소홀히 여기며 í•˜ë‚˜ë‹˜ì˜ ë²•ì¹™ì„ ì–´ê¸°ëŠ” 것ì´ê¸° 때문입니다.
요한삼서 1장 2ì ˆì— "사랑하는 ìžì—¬ 네 ì˜í˜¼ì´ 잘ë¨ê°™ì´ 네가 ë²”ì‚¬ì— ìž˜ë˜ê³  강건하기를 ë‚´ê°€ 간구하노ë¼" ë§ì”€í•©ë‹ˆë‹¤. 범사가 잘ë˜ê³  강건하기 위해서는 ì˜í˜¼ì´ 잘ë˜ì–´ì•¼ í•¨ì„ ì•Œ 수 있지요. 여기서 'ì˜í˜¼ì´ 잘ëœë‹¤'는 ê²ƒì€ í•˜ë‚˜ë‹˜ ë§ì”€ëŒ€ë¡œ ì‚´ì•„ê°ìœ¼ë¡œ ìžƒì—ˆë˜ í•˜ë‚˜ë‹˜ì˜ í˜•ìƒì„ ë˜ì°¾ëŠ” ê²ƒì„ ëœ»í•©ë‹ˆë‹¤. 신명기 28장 2ì ˆì—ë„ "네가 네 하나님 ì—¬í˜¸ì™€ì˜ ë§ì”€ì„ 순종하면 ì´ ëª¨ë“  ë³µì´ ë„¤ê²Œ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했습니다.
ê·¸ëŸ°ë° í•˜ë‚˜ë‹˜ ë§ì”€ëŒ€ë¡œ 사는 사람ì´ë¼ í•´ë„ ì¶•ë³µì„ ë°›ìœ¼ë ¤ë©´ 믿ìŒìœ¼ë¡œ 씨를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ê±°ë‘ê³ ìž í•˜ëŠ” ì‚¬ëžŒì€ í•˜ë‚˜ë‹˜ì˜ ë²•ì¹™ì„ ì–´ê¸°ë ¤ëŠ” 것ì´ê³  í•˜ë‚˜ë‹˜ì„ ë§Œí™€ížˆ 여기는 사람ì´ê¸° 때문입니다(ê°ˆ 6:7). 아무리 믿ìŒì´ í° ì‚¬ëžŒì´ë¼ í•´ë„ ë§Žì´ ì‹¬ì„ ë•Œ ë§Žì´ ê±°ë‘ë©°, ì ê²Œ 심으면 ì ê²Œ 거둘 ìˆ˜ë°–ì— ì—†ìŠµë‹ˆë‹¤(고후 9:6). 믿ìŒìœ¼ë¡œ ì‹¬ì„ ë•Œ 하나님께서는 누르고 í”들어 넘치ë„ë¡, ê³§ ê°‘ì ˆ ì´ìƒì„ 주시고 ì˜í˜¼ì´ ìž˜ëœ ë§Œí¼ 30ë°°, 60ë°°, í˜¹ì€ 100배로 ê°šì•„ 주시지요.
여기서 ë§Žì´ ì‹¬ëŠ” ìžê°€ ë§Žì´ ê±°ë‘”ë‹¤ëŠ” ë§ì€ 단지 액수나 ë¶„ëŸ‰ë§Œì„ ì˜ë¯¸í•˜ì§€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ê° ì‚¬ëžŒì´ ì–´ë–¤ 중심으로 사랑과 믿ìŒì„ ê°–ê³  심었는지 ê·¸ ì¤‘ì‹¬ì˜ í–¥ì„ ë°›ìœ¼ì‹­ë‹ˆë‹¤. 예수님께서 구차한 중ì—ë„ ìžê¸° ì†Œìœ ì˜ ì „ë¶€ì™€ ê°™ì€ ë‘ ë ™ëˆì„ 드린 과부를 칭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마ìŒê³¼ ì •ì„±ì„ ë‹¤í•´ 드린 ì¤‘ì‹¬ì˜ í–¥ì„ ê¸°ë» ë°›ìœ¼ì‹œëŠ” 것입니다.
물론 물질로 심었다 해서 물질로만 ê°šì•„ 주시는 ê²ƒì€ ì•„ë‹™ë‹ˆë‹¤. 당장 물질로 주시지 ì•Šì•„ë„ ì˜í˜¼ì´ 잘ë˜ê²Œ 하시는 ì¶•ë³µì´ ì°¸ëœ ì¶•ë³µì´ì§€ìš”. ì´ë°©ì¸ì´ë©´ì„œë„ í•˜ë‚˜ë‹˜ì„ ê²½ì™¸í•˜ì—¬ 구제를 ë§Žì´ í–ˆë˜ ê³ ë„¬ë£ŒëŠ” 온 ê°€ì¡±ì´ êµ¬ì›ë°›ëŠ” ì€ì´ì„ 받았으며, 열심히 선행과 구제를 ìŒ“ì•˜ë˜ ë„르가ë¼ëŠ” ì—¬ì¸ì€ ì£½ì—ˆë‹¤ê°€ë„ ê¸°ë„받고 살아나는 ì²´í—˜ì„ í•˜ê¸°ë„ í•˜ì˜€ìŠµë‹ˆë‹¤.

사랑하는 ì„±ë„ ì—¬ëŸ¬ë¶„,
í•˜ë‚˜ë‹˜ì˜ ì•„ë“¤ì´ì‹  예수님께서 ì§ìŠ¹ì˜ ìš°ë¦¬ì—서 태어나 êµ¬ìœ ì— ëˆ„ì´ì‹  ê²ƒì€ ì§ìŠ¹ê³¼ ê°™ì€ ì‚¬ëžŒë“¤ì—게 ìƒëª…ì˜ ì–‘ì‹ì´ ë˜ì–´ 주시기 위함입니다. 천지 ë§Œë¬¼ì˜ ì£¼ì¸ì´ì‹  예수님께서 ì´ ë•…ì—서 가난하게 사신 ê²ƒì€ ì‚¬ëžŒë“¤ì˜ ê°€ë‚œì„ ëŒ€ì†í•˜ê³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ì´ì§€ìš”.
그러므로 부요케 하시며 ì¶•ë³µ 주시기를 ì›í•˜ì‹œëŠ” í•˜ë‚˜ë‹˜ì˜ ì‚¬ëž‘ê³¼ 섭리를 깨달아 예수 그리스ë„를 믿ìŒìœ¼ë¡œ ì‚¬ëžŒì˜ ë³¸ë¶„ì„ í–‰í•˜ë©° ì˜ìœ¡ ê°„ì— ì¶•ë³µì„ ë°›ì•„ 하나님께 ì˜ê´‘ ëŒë¦¬ì‹œê¸°ë¥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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