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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7ì›” 2ì¼ ìˆ˜ìš”ì¼ ì˜¤ì „ 8:46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í•˜ë‚˜ë‹˜ì€ ì‚¬ëž‘ì´ì‹œë¼' 시리즈 5 - ì‚¬ëž‘ì€ í—ˆë‹¤í•œ í—ˆë¬¼ì„ ë®ìœ¼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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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ë…„ 11ì›” 24ì¼ ì¼ìš”ì¼


"ë¬´ì—‡ë³´ë‹¤ë„ ì—´ì‹¬ìœ¼ë¡œ 서로 사랑할지니 ì‚¬ëž‘ì€ í—ˆë‹¤í•œ 죄를 ë®ëŠë‹ˆë¼"
(베드로전서 4:8)


ì‚¬ëž‘ì˜ íž˜ì€ ì°¸ìœ¼ë¡œ 위대합니다. 아무 죄 ì—†ì´ ì‹­ìžê°€ ì²˜í˜•ì„ ë‹¹í•˜ì‹  ì˜ˆìˆ˜ë‹˜ì˜ ì‚¬ëž‘ìœ¼ë¡œ 누구든지 믿ìŒìœ¼ë¡œ 구ì›ë°›ì•„ ì²œêµ­ì— ë“¤ì–´ê°ˆ 수 있는 ê¸¸ì´ ì—´ë ¸ìŠµë‹ˆë‹¤.
ê·¸ ê²°ê³¼, 죄로 ì¸í•´ ì£½ì„ ìˆ˜ë°–ì— ì—†ëŠ” ì‚¬ëžŒë“¤ì´ ë¶€í™œí•˜ì‹  예수 그리스ë„를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ìŒì€ 물론 í•˜ë‚˜ë‹˜ì˜ ìžë…€ ëœ ê¶Œì„¸ì™€ ì¶•ë³µì„ ëˆ„ë¦¬ë©° 살게 ë˜ì—ˆì§€ìš”.
예수님처럼 죄ì¸ë“¤ì˜ 허다한 í—ˆë¬¼ê¹Œì§€ë„ ë®ì–´ 줄 수 있는 ì‚¬ëž‘ì„ ì†Œìœ í•œë‹¤ë©´ ìƒëŒ€ì—게 위로가 ë˜ê³  용기를 주며 ì°¸ëœ í–‰ë³µì„ ëˆ„ë¦´ 수 있습니다.
그러면 허다한 í—ˆë¬¼ì„ ë®ì–´ 줄 수 있는 ì‚¬ëž‘ì„ ì†Œìœ í•˜ê¸°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ìƒëŒ€ì˜ í—ˆë¬¼ì„ ë®ì–´ 준다'는 ë§ì”€ì˜ ì˜ë¯¸

í”히 '허물'ì€ ê·¸ë¦‡ëœ ì‹¤ìˆ˜ë‚˜ ìž˜ëª»ì„ ì˜ë¯¸í•˜ë©°, ì˜ì ìœ¼ë¡œëŠ” 마ìŒì†ì— 있는 ì£„ì˜ ì„±ì§ˆì´ í–‰í•¨ìœ¼ë¡œ 드러난 ê²ƒì„ ë§í•©ë‹ˆë‹¤. 예를 들어, ë„둑질할 마ìŒì´ 있다고 해서 ì´ë¥¼ 허물ì´ë¼ê³  하는 ê²ƒì´ ì•„ë‹ˆë¼ ì‹¤ì œ ë„ë‘‘ì§ˆì„ í–ˆì„ ë•Œì— í—ˆë¬¼ì´ ë˜ëŠ” 것입니다. ì´ëŸ¬í•œ í—ˆë¬¼ì„ ë®ì–´ 주기 위해서는 ì‚¬ëž‘ì˜ ë§ˆìŒì´ 있어야 하지요.
'ìƒëŒ€ì˜ í—ˆë¬¼ì„ ë®ì–´ 준다'는 ê²ƒì€ ë‹¨ìˆœížˆ í—ˆë¬¼ì„ ë“œëŸ¬ë‚´ì§€ 않는 ê²ƒë§Œì´ ì•„ë‹ˆë¼, 모든 ê²ƒì„ ì˜¤ëž˜ ì°¸ìŒìœ¼ë¡œ ìƒëŒ€ê°€ ìž˜ë  ìˆ˜ 있ë„ë¡ ê¸°ë„í•´ 주며 ìµœì„ ì„ ë‹¤í•´ ë„와주는 것까지 í¬í•¨ë©ë‹ˆë‹¤. 설령 ìžì‹ ì—게는 ì†í•´ê°€ ë ì§€ë¼ë„ ê·¸ê²ƒì„ ë®ì–´ 줄 수 있는 ê²ƒì„ ì˜ë¯¸í•˜ì§€ìš”.
ë”°ë¼ì„œ 허다한 í—ˆë¬¼ì„ ë®ì–´ 줄 수 있는 사랑 역시 오래 ì°¸ìŒì´ 기초가 ë˜ì–´ì„œ ìƒëŒ€ê°€ 온전해질 ê²ƒì„ ë°”ë¼ë³´ê³  다가오는 모든 ê³ í†µì„ ê²¬ë””ë©° 참아 주는 ê³¼ì •ì´ í•„ìš”í•œ 것입니다.
í•˜ë‚˜ë‹˜ì˜ ìžë…€ë¼ë©´ ìƒëŒ€ì˜ í ê³¼ 티를 드러내거나 없는 í—ˆë¬¼ì„ ë§Œë“¤ì–´ 전하는 ì¼ì€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ê·¸ê²ƒì„ ë®ì–´ 줄까, 그가 ë” ë°œì „í•  수 있ì„까, ë³€í™”ë  ìˆ˜ 있ì„까' 하며 ìƒëŒ€ê°€ ì§„ë¦¬ì˜ ë§ˆìŒìœ¼ë¡œ ë³€í™”ë  ìˆ˜ 있ë„ë¡ ê¸°ë„í•´ 주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ì£„ì•…ì„ ë²„ë¦¬ê³  ìƒëŒ€ì˜ í—ˆë¬¼ê¹Œì§€ë„ ë®ì–´ 주는 선한 마ìŒì´ ë˜ì–´ 모든 ì‚¬ëžŒì„ ì‚¬ëž‘í•´ì•¼ 합니다.


2. 허다한 í—ˆë¬¼ì„ ë®ì–´ 주는 ì‚¬ëž‘ì„ ì´ë£¨ë ¤ë©´

1) ìƒëŒ€ì˜ í—ˆë¬¼ì„ ë³´ì•˜ì„ ë•Œ 가만히 ëŠì„ 수 있는 마ìŒì´ ë˜ì–´ì•¼ 합니다
ì´ëŸ° 마ìŒì„ 가진 성경ìƒì˜ ì¸ë¬¼ë¡œëŠ” ë§ˆíƒœë³µìŒ 1ìž¥ì— ë‚˜ì˜¤ëŠ” ìš”ì…‰ì„ ë“¤ 수 있습니다. ìš”ì…‰ì€ ë§ˆë¦¬ì•„ì™€ 정혼한 사ì´ì˜€ëŠ”ë°, ì–´ëŠ ë‚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충격ì ì¸ 소ì‹ì„ 접하게 ë©ë‹ˆë‹¤.
êµ¬ì•½ì˜ ìœ¨ë²•ëŒ€ë¡œë¼ë©´ 그녀를 ëŒë¡œ ì³ ì£½ì´ë„ë¡ ë‚´ë†“ì„ ì¼ì´ì—ˆìŠµë‹ˆë‹¤. 그러나 ìš”ì…‰ì€ ì˜ë¡œìš´ 사람ì´ë¼ 가만히 ëŠê³ ìž 합니다. 사랑하는 ì—¬ì¸ì„ 죽게 í•  수는 ì—†ì—ˆë˜ ê²ƒìž…ë‹ˆë‹¤. ì´ëŸ° 선한 마ìŒì´ ìžˆì—ˆê¸°ì— í•˜ë‚˜ë‹˜ê»˜ì„œëŠ” 요셉ì—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ëìŒì„ 천사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ìžì‹ ì´ 구세주로 오신 ì˜ˆìˆ˜ë‹˜ì˜ ìœ¡ì˜ ì•„ë²„ì§€ë¡œ ì„ íƒë°›ëŠ” ì¶•ë³µì˜ ì‚¬ëžŒì´ ëœ ê²ƒì„ ì•Œê³  í° ê¸°ì¨ ì¤‘ì— ê±°í•  수 있게 ëœ ê²ƒìž…ë‹ˆë‹¤.
ëŒ€ë¶€ë¶„ì˜ ì‚¬ëžŒë“¤ì€ ì´ëŸ° 경우 ìƒëŒ€ì—게 ìƒí™© ì„¤ëª…ì„ í•  ê¸°íšŒë„ ì£¼ì§€ ì•Šì€ ì±„ ë°°ì‹ ê°ì„ ëŠë¼ë©° 미워합니다. 그러나 먼저 ìƒëŒ€ì˜ ìž…ìž¥ì´ ë˜ì–´ 조금만 ê·¸ 입장ì—서 ìƒê°í•˜ê³  ì´í•´í•˜ë ¤ê³  하면 ì›ë§Œížˆ í•´ê²°í•  수 있는 ì¼ë“¤ì´ 참으로 많습니다.
마ìŒì´ 선한 ì‚¬ëžŒì€ ìƒëŒ€ì˜ í—ˆë¬¼ì„ ì „í•˜ì§€ 않습니다. ì–´ë–¤ ì‚¬ëžŒì€ "ê·¸ ì‚¬ëžŒì€ ì´ëŸ¬ì´ëŸ¬í•œ ìž˜ëª»ì´ ìžˆëŠ”ë° ë‚˜ëŠ” 다 ì´í•´í•  수 있어"ë¼ê³  하며, 마치 ìžì‹ ì€ 다 ì´í•´í•˜ê³  있으며 ê·¸ ì‚¬ëžŒì„ ê°ì‹¸ 주는 너그러운 ì‚¬ëžŒì¸ ê²ƒì²˜ëŸ¼ ë§í•˜ì§€ë§Œ ì´ëŠ” 오히려 ìƒëŒ€ì˜ í—ˆë¬¼ì„ ë“œëŸ¬ë‚´ì–´ 사람들ì—게 알리는 결과가 ë˜ê³  맙니다.
골로새서 3장 13~14ì ˆì— "누가 뉘게 í˜ì˜ê°€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ìš©ì„œí•˜ë˜ ì£¼ê»˜ì„œ 너í¬ë¥¼ 용서하신 것과 ê°™ì´ ë„ˆí¬ë„ 그리하고 ì´ ëª¨ë“  것 ìœ„ì— ì‚¬ëž‘ì„ ë”í•˜ë¼ ì´ëŠ” 온전하게 매는 ë ë‹ˆë¼" ë§ì”€í–ˆìŠµë‹ˆë‹¤.
믿ìŒì˜ 형제 사ì´ì—는 다투어 í—ˆë¬¼ì„ ë“œëŸ¬ëƒ„ìœ¼ë¡œ 불ì˜í•œ ìžê°€ ë˜ëŠë‹ˆ ì°¨ë¼ë¦¬ ëˆ„ëª…ì„ ì“°ëŠ” íŽ¸ì´ ë” ë‚«ë‹¤ëŠ” ê²ƒì„ ë§ˆìŒì— 새기시기 ë°”ëžë‹ˆë‹¤. 당시는 ì†í•´ë¥¼ 보는 것 같지만 ê°ì‚¬í•˜ë©° 기ë„í•´ 나가면 하나님께서 합력해 ì„ ì„ ì´ë£¨ì–´ 주심으로 ì˜ê´‘ì„ ëŒë¦¬ê²Œ ë˜ëŠ” 것입니다.

2) ìƒëŒ€ì˜ í—ˆë¬¼ì„ ë³´ì•˜ì„ ë•Œ ê·¸ í—ˆë¬¼ì„ ë®ì–´ 주는 ì‚¬ëžŒì´ ë˜ì–´ì•¼ 합니다
창세기 9ìž¥ì„ ë³´ë©´ í—ˆë¬¼ì„ ë®ì–´ 준다는 ë§ì”€ì˜ ì˜ë¯¸ë¥¼ 잘 알 수 있는 예가 나옵니다. 하루는 노아가 í¬ë„주를 마시고 취해 ê·¸ 장막 안ì—서 ë²Œê±°ë²—ì€ ì±„ ìž ì„ ìžê³  있었습니다. ì´ ìž¥ë©´ì„ ë³¸ 둘째 아들 í•¨ì€ ë‹¤ë¥¸ ë‘ í˜•ì œì—게 가서 알리지요. ê·¸ëŸ°ë° ì…ˆê³¼ ì•¼ë²³ì€ ì˜·ì„ ì·¨í•´ ì–´ê¹¨ì— ë©”ê³  뒷걸ìŒì³ 장막 ì•ˆì— ë“¤ì–´ê°€ì„œ ì•„ë²„ì§€ì˜ í•˜ì²´ë¥¼ ë®ìŠµë‹ˆë‹¤. 그리고 ì–¼êµ´ì„ ëŒì´ì¼œ 하체를 ë³´ì§€ 않았지요. ì•„ë²„ì§€ì˜ í—ˆë¬¼ì„ ë³´ì§€ 않으려 í•¨ì€ ë¬¼ë¡  다른 ì‚¬ëžŒì´ ë³´ì§€ 못하ë„ë¡ ê·¸ í—ˆë¬¼ì„ ë®ì–´ 준 것입니다.
ìž ì–¸ 17장 9ì ˆì— "í—ˆë¬¼ì„ ë®ì–´ 주는 ìžëŠ” ì‚¬ëž‘ì„ êµ¬í•˜ëŠ” ìžìš” ê·¸ê²ƒì„ ê±°ë“­ ë§í•˜ëŠ” ìžëŠ” 친한 ë²—ì„ ì´ê°„하는 ìžë‹ˆë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ë¼ë¦¬ëŠ” í—ˆë¬¼ì´ í—ˆë¬¼ë¡œ ë³´ì´ì§€ 않으며, 설령 ëˆˆì— í™•ì—°ížˆ 드러나는 í—ˆë¬¼ì´ ìžˆë‹¤ í• ì§€ë¼ë„ 마치 ê·¸ê²ƒì´ ìžì‹ ì˜ í—ˆë¬¼ì¸ ê²ƒì²˜ëŸ¼ 민ë§ížˆ ì—¬ê¹ë‹ˆë‹¤. 예를 들어, ë‚¨íŽ¸ì„ ì‚¬ëž‘í•˜ëŠ” ì•„ë‚´ë¼ë©´ ë‚¨íŽ¸ì´ ìž˜ëª»ë˜ê¸°ë¥¼ 바랄 리 없고 ë‚¨íŽ¸ì˜ í ê³¼ í‹°ê°€ ë³´ì¸ë‹¤ í•´ë„ ë‹¤ë¥¸ 사람ì—게 알리지 ì•Šì„ ê²ƒìž…ë‹ˆë‹¤. 부모는 ìžë…€ê°€ 아무리 í‰ì•…한 죄를 지어 ê°ì˜¥ì— 갔다 í• ì§€ë¼ë„ ì‚¬ëž‘í•˜ê¸°ì— ë‹¤ë¥¸ 사람ì—게 알리려고 하지 않지요.
í ê³¼ ì ê³¼ í‹°ë„ ì—†ìœ¼ì‹  예수님께서는 ì´ ë•…ì— ì‚¬ì‹œëŠ” ë™ì•ˆ ì‚¬ëžŒë“¤ì˜ í—ˆë¬¼ì„ ì§€ì í•˜ê³  정죄하신 ê²ƒì´ ì•„ë‹™ë‹ˆë‹¤. 먼저 용서를 베풀고 병든 ìžë¥¼ 치료하셨으며 ì˜í˜¼ë“¤ì˜ 아픈 ê³³ì„ ì‹¸ë§¤ 주셨습니다. 죄ì¸ì˜ í—ˆë¬¼ì„ ë³´ë©´ ë®ì–´ 주시며 ëŒì´ì¼œ 바른길로 ê°ˆ 수 있ë„ë¡ ì¸ë„하셨지요. ì´ëŸ¬í•œ ì£¼ë‹˜ì˜ ì‚¬ëž‘ì„ ì•ˆë‹¤ë©´ ìš°ë¦¬ë„ ìƒëŒ€ì˜ í—ˆë¬¼ì„ ë®ì–´ 줄 수 있는 ì‚¬ëž‘ì˜ ë§ˆìŒì„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í—ˆë¬¼ì„ ë®ì–´ ì£¼ë¼ í•˜ë‹ˆ 무조건 í—ˆë¬¼ì„ ë®ì–´ 주는 ê²ƒì´ ì˜³ì„까요? í—ˆë¬¼ì€ ê³§ 죄요, ì£„ì˜ ì‚¯ì€ ì‚¬ë§(롬 6:23)ì´ë¯€ë¡œ ìƒëŒ€ê°€ 사ë§ì˜ 길로 가는 ê²ƒì„ ë³´ê³ ë„ ë®ì–´ 놓고 모른 체한다면 ê·¸ê²ƒì€ ì‚¬ëž‘ì´ ì•„ë‹™ë‹ˆë‹¤.
ìƒëŒ€ì˜ í—ˆë¬¼ì˜ ê²½ì¤‘ì— ë”°ë¼ ë•Œë¡œëŠ” ì‚¬ëž‘ì˜ ê¶Œë©´ì´ë‚˜ 훈계, ì±…ë§ ë“± ìƒëŒ€ì˜ 믿ìŒì˜ ë¶„ëŸ‰ì— ë§žì¶”ì–´ 바른길로 ì¸ë„해야 하는 것입니다(약 5:19~20).

3) ìƒëŒ€ê°€ 진리로 변화ë˜ë„ë¡ ì´ëŒì–´ 줘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ì‚¬ëžŒë“¤ì˜ í—ˆë¬¼ì„ ë®ì–´ 주고 ì´í•´í•´ 주는 ì°¨ì›ì„ 넘어서 모든 ê²ƒì„ ì‚¬ëž‘ìœ¼ë¡œ ê°ì‹¸ 안으심으로 ìƒëª…ì„ ë‚³ìœ¼ì…¨ìŠµë‹ˆë‹¤. 여기서 'ìƒëª…'ì´ëž€ ì©ì–´ì§ˆ ìœ¡ì˜ ìƒëª…ì´ ì•„ë‹ˆë¼ ì˜ìƒìœ¼ë¡œ ì¸ë„ë°›ì„ ìˆ˜ 있게 하는 ìƒëª…, ì˜ìœ¼ë¡œ 살리는 ìƒëª…ì„ ë§í•©ë‹ˆë‹¤. ì–´ë‘ ì— ìžˆëŠ” ì˜í˜¼ë“¤ì—게 찬란한 ë¹›ì„ ë¹„ì¶° 주는 ìƒëª…ì´ì§€ìš”.
예를 들어, 허물 ë§Žë˜ ë² ë“œë¡œê°€ ì‹­ìžê°€ì— 거꾸로 매달려 주를 위해 ì£½ì„ ìˆ˜ 있는 사람으로 변화ë˜ê¸°ê¹Œì§€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ì´ë„셨습니까?
ì‹­ìžê°€ë¥¼ 지시기 ì „ë‚  ë°¤, 예수님께서 앞으로 ë  ì¼ë“¤ì„ ì œìžë“¤ì—게 알려 ì£¼ì…¨ì„ ë•Œ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ë¼ë©´ ìžê¸° ëª©ìˆ¨ë„ ë²„ë¦¬ê² ë‹¤ëŠ” 마ìŒì´ì—ˆìŠµë‹ˆë‹¤(ìš” 13:33, 36, 37 ; 눅 22:31~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네 ëª©ìˆ¨ì„ ë²„ë¦¬ê² ëŠëƒ ë‚´ê°€ 진실로 진실로 네게 ì´ë¥´ë…¸ë‹ˆ ë‹­ 울기 ì „ì— ë„¤ê°€ 세 번 나를 ë¶€ì¸í•˜ë¦¬ë¼"(ìš” 13:38) ë§ì”€í•˜ì…¨ì§€ìš”. ê²°êµ­ 베드로는 ë‹­ì´ ìš¸ê¸° ì „ì— ì˜ˆìˆ˜ë‹˜ì„ ëª¨ë¥¸ë‹¤ê³  세 번ì´ë‚˜ ë¶€ì¸í•˜ê³  ë§ì•˜ìŠµë‹ˆë‹¤. ê³§ì´ì–´ ë‹­ì´ ìš¸ê³  주께서 베드로를 보시니 ì˜ˆìˆ˜ë‹˜ì˜ ë§ì”€ì´ ìƒê°ë‚˜ ë°–ì— ë‚˜ê°€ì„œ 심히 통곡하였지요(눅 22:54~62).
ê·¸ëŸ°ë° ë§Œì¼ ë² ë“œë¡œê°€ 여기서 주저앉고 ë§ì•˜ë‹¤ë©´ ê¶ŒëŠ¥ì˜ ì‚¬ë„ë¡œì„œì˜ ë² ë“œë¡œëŠ” 존재할 수 ì—†ì—ˆì„ ê²ƒìž…ë‹ˆë‹¤. 베드로는 그때 예수님께서 ë˜ ë¬´ìŠ¨ ë§ì”€ì„ 하셨는지 떠올렸습니다. "네가 ì§€ê¸ˆì€ ë”°ë¼ì˜¬ 수 없으나 후ì—는 ë”°ë¼ì˜¤ë¦¬ë¼", "너는 ëŒì´í‚¨ í›„ì— ë„¤ 형제를 굳게 하ë¼", "너는 ë² ë“œë¡œë¼ ë‚´ê°€ ì´ ë°˜ì„ ìœ„ì— ë‚´ êµíšŒë¥¼ 세우리니 ìŒë¶€ì˜ 권세가 ì´ê¸°ì§€ 못하리ë¼" í•˜ì…¨ë˜ ë§ì”€ 등ì´ì—ˆì§€ìš”.
예수님께서 ìžì‹ ì˜ 믿ìŒì´ 떨어지지 않기를 기ë„í•´ 주셨고, ìžì‹ ì´ 주를 ë¶€ì¸í•  ê²ƒì„ ì•„ì‹œë©´ì„œë„ ì±…ë§í•˜ì‹  ê²ƒì´ ì•„ë‹ˆë¼ ë‹¹ë¶€ì˜ ë§ì”€ë§Œ í•´ 주신 ì¼ë“¤ì— 대해 ë– ì˜¬ë ¸ë˜ ê²ƒìž…ë‹ˆë‹¤. ì´ë¡œ ì¸í•´ 베드로는 지난 ì¼ë“¤ì„ ìƒê°í•˜ë©° ê°ë‹¹ì¹˜ 못할 ì˜ˆìˆ˜ë‹˜ì˜ ì‚¬ëž‘ì— ê°ê²©í•´ ë˜ë‹¤ì‹œ 하염없는 ëˆˆë¬¼ì„ í˜ë ¸ì„ 것입니다.
ê·¸ 당시ì—는 예수님께서 ë² ë“œë¡œì˜ ì†ë§ˆìŒ ê³§ ì˜ˆìˆ˜ë‹˜ì„ ë¶€ì¸í•  마ìŒì´ 있다는 ê²ƒì„ ì‚¬ëžŒë“¤ ì•žì— ë“œëŸ¬ë‚´ì‹œëŠ” 것처럼 ë³´ì¼ ìˆ˜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ì¼ì–´ë‚  ì¼ë“¤ì„ 미리 ë§ì”€í•´ 주심으로 베드로가 ì˜ˆìˆ˜ë‹˜ì„ ë¶€ì¸í•œ ê²ƒì— ëŒ€í•œ ì–‘ì‹¬ì˜ ê°€ì±…ìœ¼ë¡œ 고통스러워하며 ë”한 죄 가운ë°ë¡œ 빠져들 수 ìžˆì—ˆë˜ ìƒí™©ì—서 구해 ë‚´ì‹  것입니다.
ì´ ì¼ì€ 예수님께서 허다한 í—ˆë¬¼ì„ ë®ì–´ 주는 ì‚¬ëž‘ì˜ ê·¹ì¹˜ë¥¼ 우리ì—게 나타내 주신 것으로서, ì œìž ë² ë“œë¡œë¿ ì•„ë‹ˆë¼ ëª¨ë“  ì‚¬ëžŒì— ëŒ€í•´ ì´ëŸ¬í•œ 사랑으로 ì´ë„셨습니다. ì´ë¯¸ ì§€ì€ ì£„ë¥¼ 사해 ì¤Œì€ ë¬¼ë¡ , ë”한 죄를 ì§“ì§€ 않게 하는 것, ì´ê²ƒì´ ì§„ì • í—ˆë¬¼ì„ ë®ì–´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ì‚¬ëž‘ì€ ìš°ë¦¬ê°€ ìƒìƒí•  수 있는 것 ì´ìƒìœ¼ë¡œ 놀ë¼ìš´ íž˜ì„ ì†Œìœ í•˜ê³  있습니다. ë”°ë¼ì„œ ë¬´ì—‡ë³´ë‹¤ë„ ì—´ì‹¬ìœ¼ë¡œ 서로 사랑함으로 ì˜í˜¼ë“¤ì„ 주님께로 ì¸ë„하며 í•˜ë‚˜ë‹˜ì˜ ì‚¬ëž‘ì„ ë„리 전하시기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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